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81
한자 龍雲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안득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용운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 용운재 중수
현 소재지 용운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지도보기
성격 재숙소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숙소.

[위치]

용운재(龍雲齋)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우곡에 있다.

[변천]

용운재는 시천조(始遷祖) 이산수(李山壽)를 기리기 위하여 1935년 9대손 이민희(李珉熙)가 창건하여 재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1956년 10대손 이재윤(李在允)과 종원(宗員)들이 협력하여 중수하였다.

문강공(文剛公) 이사균(李思鈞)의 6대손인 이산수는 광해군(光海君)의 혼정(混政)을 피해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벼슬을 버리고 경상북도 청도(淸道)로 남하하였다가, 다시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우곡마을로 옮겨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황]

용운재가 있는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우곡에는 광해군 이후 파평윤씨(坡平尹氏)가 살다가, 숙종(肅宗) 대를 지나며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세거지가 되었다. 경주이씨의 후손들은 용운재에서 시천조 이산수를 추모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혼정을 피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았던 이산수의 선택은 지금 우리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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