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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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龜元 |
영어공식명칭 | Park Gwi-won |
이칭/별칭 | 언령(彦齡),채지당(採芝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련 |
출생 시기/일시 | 1442년 - 박귀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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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07년 - 박귀원 문과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30년 - 박귀원 사망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거주|이주지 | 고례리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
묘소|단소 | 고등산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
사당|배향지 | 사호정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성(密城)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박귀원(朴龜元)[1442~1530]의 본관은 밀성(密城)[밀양]이며, 자는 언령(彦齡), 호는 채지당(採芝堂)이다. 박귀원은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큰 씨족인 행산(杏山) 박세균(朴世均)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청송부사를 지낸 박시예(朴時乂)이다. 할아버지는 박개주(朴介柱)이며, 아버지는 성균진사 박효선(朴孝先)이다. 어머니는 경주김씨 김준(金準)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이씨 이량(李亮)의 딸이고, 아들은 무선전(武宣傳) 박수팽(朴壽彭)과 박수전(朴壽瑼)이다.
[활동 사항]
박귀원은 1442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박귀원은 66세 되던 1507년(중종 2)에 문과에 합격하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함안의 칠원현감(漆原縣監)을 지냈으며, 학교를 일으켜 민풍을 진작하였다. 만년에 향리로 돌아와 살 때 박귀원은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과 교유하였다.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사호도(四皓圖)’라 하고 서로 그림을 주고받았다. 박귀원은 주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구곡가인 「고야구곡가(高射九曲歌)」를 남겼다. 박귀원이 때때로 묵으며 쉬는 집을 점필재 김종직이 찾아와 고상한 정취를 높여 옛 중국의 상산사호(商山四皓)에 빗대어 ‘사호정(四皓亭)’이라 불렀다. 박귀원이 그 말에 따라 편액하였다.
[묘소]
박귀원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고등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귀원이 죽은 후 사호정이 퇴락하자 1606년(선조 39)에 현손인 박이화(朴而華) 형제가 중건하였다. 1958년에 다시 세우고, 해마다 후손들이 모여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