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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변한(弁韓) 12개 소국 중 하나. 삼한 중 변한에 있었던 12개 소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중 고순시국의 위치를 진주 지역으로 비정했던 이병도의 견해와는 달리 정인보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 지역으로,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각각 비정했다. 대체로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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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과 곤양군 경계에 있었던 포구. 조선 세종 19년(1438) 남해현(南海縣)을 설치하고 진주 김양부곡(金陽部曲)을 내속시켜서 곤양군(昆陽郡)을 형성하였다. 이때 김양포는 곤양군의 경계에 있었으며 어장이 있었다. 김양포를 ‘금양포’로 부르는 것은 한자어 김 또는 금을, 옮기는 이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어 이를 하나로 바로잡아 통상적으로 지명을 일컫는 ‘금’으로 표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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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에 있었던 지명. 이 곳을 노루목(또는 노루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산자락을 넘어가는 고개가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써서 한자어로 장항(獐項)이라고 했다. 노루목은 우수리 우수마을회관에 가까워 우수리 노루목이라고도 부르지만 용산리 노루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옛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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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옛 지명. 동리 안에 붉은 연못이 있어 단지동(丹池洞)이라고 하였다. 단동(丹洞)이라는 이름은 ‘의를 숭상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었다고 한다. 단목(丹牧)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에 합격한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려보니, 저녁 노을 햇빛이 연못물 위에 붉게 비치고, 말이 거기서 물을 마시니, 여기서 붉을 단(丹)과 먹일 목(牧)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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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에 속했던 옛 지명. 나무 다리를 건너서 가야 했다 하여 다리골이라 불렀고, 이것이 달리골이 되었고 한다. 조선 전기에 달리동은 진주목 북면 정곡리(井谷里)에 속했다. 1897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진주군 집현동면 달리촌(達理村)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달리동은 지내리와 대암리로 나누어 편입되었다. 현재의 진주시 집현면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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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 일대에 있던 연못.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사지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강주 관서(진주성)의 대사(大寺)라는 절이 있던 곳의 동쪽 땅이 점점 꺼져 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그 연못의 크기는 세로가 13척이고 가로가 7척이었는데 난데없이 잉어 5~6마리가 생겨나 점점 커지면서 연못도 따라 커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외곽에 있던 대사지는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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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성 동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로 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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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에 있는 말의 무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명으로, 이 곳 사람들은 ‘말매뜽’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월아산에 목책성(木柵城)을 쌓고 방어할 때 장군의 말이 죽어서 묻은 말무덤에서 유래되었다. 금산면 용아리의 가는골[細谷] 저수지 위쪽 산기슭 소나무 숲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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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덕천강가에 있던 나루터. 지금은 사라져가는 이름이지만, 50대 이후의 대평면 사람들에게 생생한 지명의 하나이다. 덕천강의 수리 조합이 설립되기 이전 대평면의 경작지는 논이 적고 대부분 밭이었다. 밭에는 주로 무를 심고 후작으로 보리와 밀을 심었다. 식량이 부족하기에 밭에서 생산한 무를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벼와 교환해야 했다. 이 무렵 옥종·수곡·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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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진주성의 북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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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에 있었던 지역 최후의 나루터. 1997년까지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와 대평리를 잇는 교통 수단이었다. 이 곳은 댐 건설 이전부터 교통의 요지였으며, 상인들의 거점지가 되었다. 특히 농산물 집산지의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물류 및 사람들을 수송하는 교통 수단이 필요했었다. 댐 건설 전부터 상촌나루터와 연결되는 대평리 어은의 밤밭나루터와 어은 북서쪽에 있는 한강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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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의 행정구역 중 하나. 조선시대 진주성 서쪽지역으로, 현재 평거동, 대평면, 수곡면 지역과 하동군 화개면, 악양면, 적량면, 옥종면, 청암면, 횡천면 일부와 사천시 축동면, 산청군 시천면, 삼장면, 단성면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23년(940) 3월에 강주(康州)를 진주(晋州)로 개칭하면서 처음으로 지금의 진주라는 지명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성종 2년(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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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와 냉정리 경계 사이에 있었던 다리 대암리와 냉정리 사이에는 정수천(亭水川)이 있는데, 물살이 셀 뿐 아니라 그 위에 놓는 다리가 잘 썩어 조선 말엽 큰 나무를 숯으로 구워 다리를 놓았다 하여 숯다리라 불렀다. 이후에 숯다리는 돌로 바뀌었다. 폭이 1m 30㎝, 길이 4m, 두께가 30~40㎝이었던 이 돌다리는 원래 4개였으나 2개만 남아 있었는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