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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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瀁 |
이칭/별칭 | 만육(晩六),백함(伯函),장륙당(藏六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오경택 |
출생 시기/일시 | 1351년 - 최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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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76년 - 최양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84년 - 최양 이성계를 도와 서북면 정벌에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최양 조선 개국 후 진안으로 낙향 |
몰년 시기/일시 | 1424년 - 최양 사망 |
이주지 | 최양 낙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
수학 | 최양 수학지 - 황해도 개경시 |
강학 | 최양 강학지 - 전라북도 진안군 |
묘소|단소 | 최양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 |
사당|배향지 | 영계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
사당|배향지 | 서산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 |
유허비 |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360-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경력 | 문하찬성사 |
[정의]
고려 말 조선 초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함(伯函), 호는 만육(晩六)·장륙당(藏六堂). 아버지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역임한 최지(崔贄)이고 어머니는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역임한 정운관(鄭云瓘)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양(崔瀁)[1351~1424]은 14세에 외삼촌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익혔으며,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한 이후 이부 상서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384년(우왕 10) 예문관 직제학으로 재임하던 중 서북면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를 도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후 대사간과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하였다.
1392년(태조 1) 포은 정몽주가 순절하게 되자 벼슬을 내어 놓고 진안군 백운면 중대산(中臺山)[현 팔공산]으로 낙향한 이후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395년(태조 4) 태조가 사람을 불러 국정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면서 관직과 전록(田祿)을 하사하려고 했지만 최양은 이를 간곡하게 거절하였다. 이후 그의 선산이 있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으로 옮겨 말년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만육일고』가 전해지고 있다.
[묘소]
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의 영계사(靈溪祠)와 전주시의 서산사(西山祠)에 배향되었으며, 1834년(순조 34)에 충익(忠翼)의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