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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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龜河 |
영어음역 | Hwang Guha |
이칭/별칭 | 성징(聖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소정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어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건(黃鍵)이며, 어머니는 이문행(李文行)의 딸이다.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2년(숙종 38) 지평·사서를 지냈으며, 1713(숙종 39) 정언·부수찬·수찬을 거쳐 1716년(숙종 42) 교리를 지냈다.
교리 재임 중인 1716년 1월에 제주별견어사로 파견되어 여러 해 동안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구휼하고 행정을 감찰하였다. 굶어 죽은 백성들을 잘 묻어 주었으며 위령제도 지내게 하였고, 모든 진상품을 3분의 2로 감면해 주도록 하였다. 부임 때 가져온 조 3만 섬으로 구휼하고 남은 곡식들을 제주목·대정현·정의현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고, 환자곡(還子穀)도 절반만 거두게 하였다. 한편 초시를 거행하여 문과에 고처량(高處亮)[1688~1762]·정창선(鄭敞選)[1683~1746]·고만갑(高萬甲)[1681~?] 3인을 급제시켰다.
1717년(숙종 43) 이조정랑에 임명되었으며, 1718년(숙종 44) 부응교와 사간을 거쳐 1719년 대사간을 지냈다. 1721년 대사간 재임 중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1648~1722]·이이명(李頤命)[1658~1722]·이건명(李健命)[1663~1722]·조태채(趙泰采)[1660~1722]가 김일경(金一鏡)[1662~1724]의 탄핵으로 유배될 때 파직되었다. 1724년(경종 4)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이 집권하자 대사성이 되었다. 1726년 예조참판·도승지·호조판서를 지냈으며, 1727년(영조 3) 호조판서·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724(경종 4) 4월에 세워진 별견어사황공구하지성진민비(別遣御使黃公龜河至誠賑民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성산읍 수산리 72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