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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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鍾鳴 |
영어음역 | Hong Jongmyeo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유정 |
[정의]
한국전쟁 때 제주에서 후진 양성과 작품 활동을 한 서양화가.
[개설]
한국전쟁 때 제주도에 피난 와서 제주의 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서양화가이다. 토속적인 풍물을 기저로 하여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고 내면의 종교관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범신론적 작품세계를 구현한 대표적인 서양화가이다.
[활동사항]
평양의 광성중학교 졸업하였으며, 1942년 4월 1일 일본의 도쿄제국미술학교 본과 제1부 서양화과 입학하여 1943년 12월 군 입대로 인해 중퇴하였다가 후에 전쟁에 참전한 기간을 계산해 1969년에 도쿄제국미술학교로부터 수료를 인정받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 제주도 모슬포에 도착하여 1954년 5월까지 제주시에 거처하면서 후진 양성과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때 강태석(姜泰碩)[1938~1976]·현승북·김택화 등이 홍종명의 지도를 받았다.
그 중 강태석은 홍종명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였는데, 홍종명의 영향으로 제주의 미술계 2세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1958년 중앙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1962년부터 1969년까지 대한미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면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1963년 국제대학 교수가 되었고, 1973년부터 숭의여자전문대학 교수를 거쳐 학장을 지냈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대한미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문위원 겸 심사위원장, 1988년 한국미술협회 고문이 되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제2, 제4, 제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1986년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과 1990년~1992년 현대미술초대전 등에 출품하였다. 해외 초대 개인전으로는 1975년 프랑스 파리 트랜스포지션과 1976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신노 화랑 등에서 열었다.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하면서 한국 미술의 토속적 정취를 통해 자신의 미학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한국의 풍물을 모티프로 하는 토속적이고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자유로운 종교관을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는 범신론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 주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에 『실용색채』(1976)와 『흙에 묻혀 사는 이의 고운 마을 글과 그림』(1989)이 있다. 작품에 「시장가는 날」(1951)·「낙랑가는 길」(1951년)·「제주도 사라봉」(1953년)·「풍경」(1953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교부장관상 2회 수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상, 교육공로상, 예술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문화훈장 은관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