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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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拏山山神祭 |
영어음역 | Hallasan Sansinje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for the Hallasan Mountain God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
집필자 | 홍순만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산천단에서 한라산 산신에게 지내던 제사.
[개설]
한라산 산신제는 고려 시대부터 음력 2월에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북쪽에 마련된 단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뜻으로 드리던 제사였다. 그러나 겨울 산을 오르다가 사람이 죽는 등 사고가 잦자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이약동이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지금의 산천단에 묘단을 건립하고 산신제를 봉행하였다.
그 뒤 1703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섬 전체에 있던 당과 사찰을 없앨 때 산신제를 올리던 제단을 훼손한 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연원 및 변천]
한라산 정상에서 올리던 산신제는 고려 후기인 1253년(고종 40) 10월 한라산의 산신에게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민을 더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당시의 어수선한 난국을 타개하고 국태민안을 비는 뜻이었다.
이 제례 의식은 그 뒤 2백여 년간 지속되었으나 산신제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얼어 죽는 사람이 발생하고 부상자가 생기는 등 폐단이 많았다. 이른 봄 한라산 정상에서 제를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1박 2일에 소요되는 식량과 장비를 포함하여 산신제에 사용할 제기와 제물을 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1470년 10월 제주목사로 취임한 이약동은,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거행하면서 동사상자가 생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여 지금의 산천단에 묘단을 건립하고 한라산 산신제를 봉행하였다.
이후 한라산 정상에서 정기적으로 올리던 산신제는 없어지고, 전염병이 돌거나 가뭄이 드는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 산천단에서 비정기적으로 행하여졌으나,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이 무속신앙과 관련한 당과 제단을 없앨 때 산천단도 훼손된 이후 산신제도 올리지 않게 되었다.
[현황]
아직도 한라산 백록담 북쪽 모퉁이에는 한라산 산신제를 지냈던 단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뿐만 아니라 정의현감 김성구의 『남천록(南遷錄)』에도 한라산 정상 못 북쪽 모퉁이에 “본주(本州)에서 늘 기우하는 단”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약동이 제주시 아라동에 건립했던 산천단 자리에는 1997년 홍정표가 발굴하여 세운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禪碑)’와 ‘목사이약동선생 한라산신단기적비(牧使李約東先生 漢拏山神壇紀蹟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