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293 |
---|---|
한자 | 志安 |
영어음역 | Jian |
이칭/별칭 | 삼낙(三諾),환성(喚惺)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성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개설]
휘(諱)는 지안(志安), 자는 삼낙(三諾), 호는 환성(喚惺)이다. 고향은 춘천이며, 속성은 정씨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상봉대사(霜峰大師)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17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월담화상(月潭和尙)에게서 법을 이어받았다. 청허(淸虛) 휴정(休靜)의 5세 적손이다. 세수 66세, 법랍 51세로 입적하였다.
[활동사항]
1690년(숙종 16) 지안은 금산 직지사에서 화엄 법회를 열고 있는 모운(薰雲) 진언(震言)을 찾아갔다. 지안의 학식에 탄복한 진언은 수백 명의 학인들을 그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벽암(碧嚴) 각성(覺性)의 문하로 화엄학의 일인자라 칭송받던 지안으로부터 강석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지안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이후 1725년 화엄 대법회를 김제 금산사에서 열었을 때 모인 대중이 무려 1,400명이나 되었다. 1729년에 화엄 대법회의 일로 대선사의 모함을 받아 지리산에 거하던 중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때 곧 풀려났으나 도의 관리들이 진정을 하여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 제주도에 온 지 7일 만에 어시오름 아래에서 부좌입적(趺坐入寂)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