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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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始復 |
영어음역 | O Sibok |
이칭/별칭 | 중초(仲初),휴곡(休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진건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중초(仲初), 호는 휴곡(休谷). 아버지는 오정규(吳挺奎), 어머니는 이여황(李如璜)의 딸이다.
[활동사항]
1662년(현종 3년)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허적(許積)에게 아첨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1689년(숙종 15) 소의 장씨(昭儀張氏)[장희빈] 소생을 원자로 정호(定號)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장악한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복직되어 이조참판에 이어 한성부판윤·호조판서가 되었다.
1690년(숙종 16)에는 이조판서 겸 수어사를 지낸 후 다시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1694년(숙종 20) 폐비 민씨 복위 운동을 둘러싸고 소론이 남인을 몰락시킨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하옥,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풀려났다.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무고(巫蠱: 무술로써 남을 저주하는 일)한 사실이 발각되어 일어난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712년(숙종 38) 함평·강진 등지로 이배되었다가 1713년(숙종 39) 영해부(寧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이배되어 1716년(숙종 42) 그 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