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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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泳孝謫居- |
영어음역 | Park Yeonghyo Jeokgeoteo |
영어의미역 | Park Yeonghyo's House of Exile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76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역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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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761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의 적거 터.
[개설]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고종의 선위가 강행되자 박영효는 궁내부 대신으로서 이를 반대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제주도에 감금되었다. 1년의 감금형이 풀린 뒤에도 박영효는 독짓골에 과원을 조성하여 제주도민에게 원예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근대교육과 근대 사상 계몽에 힘쓰다가 1910년 6월에 제주를 떠났다.
[변천]
처음 박영효의 적거지는 산짓골이었으나 제주도에 오래 있을 생각으로 구남동, 즉 독짓골에서 집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박대신과원’으로 알려진 넓은 농토를 일구어 여러 가지 과실류 및 특수 작물을 재배하여 제주도민들에게 적극 권장하였다. 박영효는 감귤을 일본에서 제주도로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08년에는 기독교가 제주 지역에 처음으로 전파되었을 때 제주도민들이 이재수의 난의 영향으로 서양 종교를 배척하자 ‘기독교는 정부에서 공인한 세계적 종교’라고 설파함은 물론 제주도 내 첫 기독교회인 성내(성안)교회 설립에도 거금 100원을 기탁하였다.
또 1909년 개교된 제주도 내 첫 여성 학교인 신성여학교 설립을 앞두고 당시 일제가 설립 인가를 내주려 하지 않자 이를 막후에서 조정, 인가를 받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현황]
현재 옛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