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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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景勳 |
영어음역 | Park Gyeongh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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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 |
성별 | 남 |
생년 | 1909년(순종 3) |
몰년 | 1973년 |
본관 | 밀양 |
대표경력 | 제주도지사|제주신보사 사장 |
[정의]
광복 직후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정치인.
[개설]
본관은 밀양. 호는 우석(友鉐). 아버지는 제주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종실(朴宗實)이다. 동생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박충훈(朴忠勳)이다.
[활동사항]
일제강점기 경성공립중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호남은행에 입사하여 순천지점의 차장을 거쳐 전라남도 광주 본점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1946년 8월 1일 미군정에 의해 초대 제주도지사에 임명되었다.
1947년 3·1절 기념 시위 사건으로 주민 6명이 사망하자 3월 10일 제주도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박경훈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1947년 4월 7일 사표를 제출하였으며 4월 9일 민정장관 안재홍(安在鴻)에 의해 수리되었다.
퇴임 후 대외 활동을 그만두었으나, 1947년 7월 좌익 세력의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의 공동의장으로 추대되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화제를 모았으며, 이 때문에 좌익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1947년 10월 제주신보사를 인수하여 사장에 취임하였으나, 제주 4·3사건 직전 불온 유인물 인쇄가 문제되어 구속되었다가 무혐의 처리로 훈방되었다. 1949년 상경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1966년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업을 잇기 위해 제주로 내려와 거주하다 1973년 3월 5일 사망하였다. 묘소는 제주시 오라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