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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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弼遠 |
영어음역 | Kim Pil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71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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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71 |
성별 | 남 |
생년 | 1900년(고종 37) |
몰년 | 1950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지부 집행위원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할아버지는 항일운동가 김희정(金羲正)이며 아버지는 전 명월만호 김항유(金恒裕)이다. 항일운동가 김평원(金平遠)·김지원(金志遠)는 모두 종형제(從兄弟)이다.
[활동사항]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리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귀향하여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에게 서울의 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김시범을 주축으로 백응선(白膺善)·박두규(朴斗圭)와 함께 미밋동산[味毛峙, 후일 만세동산으로 개칭]에서 만세 운동을 계획할 때 김필원도 동참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김필원은 미밋동산으로 가서 5백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어 시위를 주도하면서 독립 만세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김필원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31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1931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지부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50년 정체불명인에게 암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광복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