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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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興學碑 |
영어음역 | Kim Jeong Heunghak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Kim Jeong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1[오현길 7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순만 |
성격 | 흥학비(興學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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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93년 |
관련인물 | 김정(金정) |
너비 | 50㎝[위]|44㎝[아래]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1[오현길 75]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 목사 김정의 흥학비.
[건립경위]
김정이 제주 지역 교육에 끼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위치]
처음에는 제주시 일도 2동, 지금의 선일건재(鮮一建材) 자리에 세워졌으나 1958년 삼천 서당(三泉書堂)이 헐리고 김정 흥학비마저 훼손될 상황에 놓였다. 이때 뜻있는 인사들이 오현단에 옮겨 세웠다.
[형태]
높이는 91㎝이고, 너비는 위쪽이 50㎝, 아래쪽이 44㎝이며 두께는 위·아래 11㎝이다. 지금은 갓돌이나 댓돌도 없이 서 있으나 원래는 비각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앞면에는 “노봉김선생흥학비(蘆峯金先生興學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선생의 이름은 정이다. 영조 10년(1735)에 본주에 부임하였는데 청백한 덕이 있었다. 학문을 진흥시키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아 삼천서당을 창건하였다. 여러 수석에 품평한 제시는 모두 선생께서 직접 쓴 글씨들이다. 아, 선생이 을묘년(1735 : 을사년이 아님) 9월 3일에 화북관에서 졸하니 영혜사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신미년에 사당이 훼철된 후 계사년에 이르러 이에 조그만 빗돌을 세워 추모하는 뜻을 붙이니 저 을묘년으로부터는 159년이 지난 10월 일이다.(先生諱정 英廟乙卯 莅州有淸德 以興學爲己任 創三泉齋 凡水石品題 皆手澤也 嗚呼先生乙巳 九月三日 卒于禾北館 追享永惠祠 申未撤祀後 癸巳爰竪短碣 以寓追慕 距乙卯 一百五十九年 十月日也)”라고 새겨져 있다.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김정이 제주 목사로 부임했던 을묘년(乙卯年)이 1735년(영조 11)인데, 159년 만이라고 했으므로 1893년(고종 30) 10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김정은 영조 때 제주 목사로 있으면서 삼천서당(三泉書堂)을 지어 평민의 자제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놓았고, 화북포의 항만공사(港灣工事)를 완성하여 선박의 안전을 도모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제주도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