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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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夢煃 |
영어음역 | Kim Mongg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745년(영조 21) 이산부사 재임 중 사간원정언 이응협(李應協)[1709~?]이 “이산부사(理山府使) 김몽규는 탐욕스러운데다가 불법을 자행하여, 원망이 무더기로 일어나고 있으며”라는 상소를 올려 파직되었다.
1752년(영조 28) 12월 윤구연(尹九淵)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54년 (영조 30) 10월에 영조의 탄신일에 축하하는 전문(箋文: 임금이나 왕후, 태자에게 올리던 글)을 올리지 않아 1754년 10월에 파직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 옹중석(翁仲石)을 동·서·남 삼문(三門) 성 밖에 세우고, 1753년(영조 29) 운주당(運籌堂)과 관덕정(觀德亭)을 중창하였는데, 당시 옹중석은 현재 관덕정 앞에 2좌, 제주 삼성혈 입구에 2좌가 있다.
김몽규가 옹중석을 만든 것은 숙종 및 영조 연간에 흉년이 자주 들어서 아사자가 많았고, 그 원귀가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힌다 하므로 삼문 밖에 세우게 된 것이다.
[저술과 작품]
바위에 새긴 글씨가 현재 방선문(訪仙門)에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제주도민들은 김몽규의 업적을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1759년(영조 35) 4월 목사김공몽규존성대사비(牧使金公夢煃尊聖待士碑)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번지에 소재한 제주향교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