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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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萬濟 |
영어음역 | Kim Manj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허호준 |
성격 | 학생운동가|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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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
성별 | 남 |
생년 | 1912년 |
몰년 | 1946년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다녔다.
문제가 된 제주공립농업학교의 부당한 졸업사정사건의 발단은 교내 행사에서 일황의 칙어 낭독을 거부한 김원요(金源堯)와 일제의 황민화 교육과 민족적 차별에 대해 모멸감과 저항심을 갖고 있던 양두옥(梁斗玉)[1914~1966]과 신창진(愼昌珍)[1914~1940]에 대한 학교의 처분이었다.
제주공립농업학교는 1931년 3월에 졸업 사정회에서 김원요에게 퇴학을, 양두옥과 신창진에게 각각 유급 처분을 내렸다. 3월 7일 졸업식이 끝나자 동기생 양치삼(梁致三) 등 9명이 교무실에 들어가 학우의 제적과 유급 조치에 대한 항의로 기물을 부수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모두 구속되는 사태로 발전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동기생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학교장인 스기사키에게 있다며 이두일(李斗一), 오화국(吳化國), 홍성옥(洪成玉), 양공팔(梁公八), 김만제, 문종학(文鍾學), 문종택(文鍾澤), 현도선(玄道善) 등과 함께 교장 사택에 들어가 막대기와 돌멩이 등으로 유리창 수십 장을 부수는 등 기물을 파손하였다.
경찰이 출동하여 이들은 구속되었다. 반면 이두일은 몰래 숨어다니며 화북리 거석마을과 조천 등지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기록한 전단을 뿌리거나 붙이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던 중 붙잡혔다.
김만제는 1931년 8월 3일에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1931년 8월 31일 퇴학을 당하였다. 문종학과 고경수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으며, 문종택과 김두석은 벌금 50원과 유치 50일을 받았다. 제주공립농업학교 부당졸업사정 항의사건(일명 제주공립농업학교 학생운동)은 당시 일본의 황민화 교육에 대한 제주 학생들의 일제에 저항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상훈과 추모]
1995년 8월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