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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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光秋 |
영어음역 | Kim Gwangchu |
이칭/별칭 | 청탄(聽灘)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유정 |
성격 | 서예가|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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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성별 | 남 |
생년 | 1905년 |
몰년 | 1983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영주연묵회 회장|오현학원 재단이사|제주도 도의원 |
[정의]
제주 출신의 서예가.
[개설]
호는 청탄(聽灘). 회화·전각·서예를 두루 익힌 미술가이자 제주의 대표적인 현대 서예가이다.
[활동사항]
1923년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배재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고희동(高羲東)[1886~1965]·김복진(金復鎭)[1901~1940]·안석영(安夕影)[1901~1950] 등에게서 미술의 안목을 배웠으며 1928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2년 귀향하여 고향 학교의 훈도와 의용소방대장, 마을 구장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잡지 『아사히 카메라』 주최 사진 공모전에 「나루터」가 입선하여 제주 사진계의 선구자가 되었다.
광복 후 1945년 10월『제주신문』 창간에도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발하자 전라남도 광주로 피신하여 허백련(許百鍊)[1896~1977]·허건(許楗)[1907~1987]·천경자(千鏡子)[1924~ ]와 교류하였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57년 귀국하였으며, 1960년에는 제주도 도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후 제주시정자문위원, 민주공화당 제주도 당무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서예동호인 모임인 담담회(淡淡會)·제주연묵회 창립을 주도하여 10년 동안 회장을 지냈다. 1973년 소묵회(素墨會)·영주수석회·삼다수석회·연미수석회·향란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돌의 고장인 제주의 아름다운 수석 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회화·사진·서예·전각·수석 등에 두루 견문이 넓고, 정치 활동에도 관여하였던 제주의 문화예술인이다. 특히 전각에 뛰어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제주 전각의 발전에 질적·양적으로 이바지하였다. 말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472번지에 있는 별도봉 동쪽 언덕에 처소를 마련하고 화훼·수석·서예·전각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저술 및 작품]
유화 작품에 「풍경」, 전각 작품에 「소암(素庵)」·「금당(琴塘)」·「석빈(石濱)」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제주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상금 전액을 제주도미술전람회에 쾌척하여 이 해부터 청탄상(聽灘賞)을 시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