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241 |
---|---|
한자 | 交通 |
영어의미역 | Traffic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사람이나 물건 또는 의사, 정보가 떨어져 있는 어떤 지점 사이를 이동하는 일.
[개설]
제주시 교통 변화의 50년은 제주도 교통 변화의 50년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시의 교통을 개관하면서 거시적으로는 제주도의 교통과 맥을 함께 서술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는 급속한 발전과 변화를 겪어왔다. 제주시의 발전도 마찬가지여서, 제주시 교통 변화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 중심으로 살펴본다.
[육상교통]
1. 자동차의 등장과 변화
제주시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이혁(朴離赫)이라고 하는 사람이 동부자동차회사[일명 동부차부]를 세우고 처음으로 자동차를 들여 왔다고 한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박이혁은 6인승 포드 합승 차량으로 제주~성산포간을 운행하였는데, 제주~성산포는 3시간 30분, 제주~모슬포 구간은 4시간이 소요 되었다. 또한, 서귀포~모슬포 구간은 1시간 45분, 서귀포~성산포 구간은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1936년에는 제주 최초로 우편 운송 전용 자동차가 도입되어, 우편배달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당시 민간인들에게는 우편배달이 거의 유일한 소식 전달 방법이었을 것이므로 우편이 한 시간이라도 빨리 도착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 입학통지서, 군사우편, 전사소식 등 우편에 의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다. 1943년에는 일제에 의해 제주자동차주식회사로 대중교통 회사들이 통합되었다.
자동차는 충분했으나 기름이 없어 목탄을 싣고 운행했고, 운행 횟수도 서귀포, 성산포, 모슬포를 하루 1회 운행하는 정도여서 만족스럽지는 못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군이 사용하던 화물 트럭을 미군정으로부터 받아 포장을 치고 여객을 수송했다고 한다.
1955년 제주시제 실시 당시에는 199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1961년에 도로가 부분적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1962년 10월 12일 한일여객자동차회사가 최초로 시내버스 면허를 받았으나 2001년에 운송 면허를 반납하였다.
2003년 9월에 직영 기업의 형태로는 우리나라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공영 버스가 출범하였고, 2005년 현재 제주 시내버스로는 공영버스, 삼영교통이 운영되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11만 1174대가 등록되어 있는데, 승용차 76,769대, 버스 10,168대, 화물차 24,015대, 특수차 222대이다. 2004년 12월 10만 5,459세대였으므로 세대 당 1.05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 도로포장과 개설
제주시의 도로 개발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보면 현대적 의미의 도로가 최초로 개설된 것은 1920년 이른바 ‘신작로’라 불리는 해안 일주 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며, 그 이전까지는 도로가 이웃 마을끼리 연결하는 보도를 위한 것에 불과 했었다.
이보다 앞서 원시적인 마을간 통로에서 지역간 연결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416년(태종 16) 제주도가 제주읍·대정읍·정의읍 등 3개 읍으로 나누면서, 이 3개 지역을 연결하는 중 산간에 만들어진 도로가 처음이다.
당시 선인들은 주거지를 현재와 같이 해안에 정하지 않고 바다로부터 들어온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중 산간 지역에 식수가 있고 풍수지리상 조건이 좋은 지역을 찾아 주거지를 마련했기 때문에 도로의 발달은 지금과는 반대로 중 산간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후 육지로의 나들이로 해안 마을이 차츰 만들어짐에 따라 이들 마을과 연결하는 통로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 지기 시작했고, 이들 해안 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로 해안 신작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해안 일주 도로는 일제의 욕심도 가미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합병 이후에 제주도에서 관심을 가진 것 중 하나가 수산 자원이었다. 일제는 이에 덧붙여서 제주도를 각종 산물의 생산 기지로 만들려 하였고, 그러한 목적 수행을 위해서 일주 도로가 필요하였다.
1912년부터 2년간 기존 도로에 대해 대대적으로 정비 작업을 벌인 뒤 1914년에는 3개년 계획으로 도로 확장 공사에 착수하였고, 마침내 1917년 총 연장 181㎞ 너비 6m로 확장되어 자동차의 왕래가 가능해 졌으며, 1932년에는 너비 10m로 재 단장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제주 시내의 시가지 도로는 재래 도로로 협소하였는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남문로터리와 중앙로 간은 1966년부터 1969년 6월까지 3년간에 걸쳐 확장 개설되었다. 제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이 도로의 확장 개설은 기존 시가지 면모를 혁명적으로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지로 확장은 1963년 3월부터 그 해 말까지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고, 관덕정에서 한천교에 이르는 구간은 1970년 2월부터 1971년 말까지 2년간에 걸쳐서 진행, 완공되었다.
제주시의 주 간선 도로의 하나로 중 산간 도로라고 하는 국도 16호선이 있다. 이 도로는 1963년부터 시작되어 1992년에 제주도 전체 포장이 완성되었다. 산업 동맥 도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도로는주민들이 동원되어 마을 구간을건설하였다. 도로 건설 당시 노임으로 밀가루를 받으며 개설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연유로 구호도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삼로는 1984년 확장 공사가 이루어진 동광로·서광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 1994년 완공되었다. 4차선 완공 이후 6차선으로 서둘러 확장하여 1996년 완공되었다. 이는 예산 때문에 4차선으로 추진하였다가 제주시 자체 예산을 긴급 편성, 토지 보상을 하고 확장한 것이다.
최근에는 도평로가 2003년 1월 15일 개설 준공되었고, 제주시 제2우회도로가 가설 중에 있다. 제2우회도로는 2002년 9월 16일에 착공하여 2005년 3월에는 연동과 한마음병원 구간까지를 부분 개통하여 연북로라는 이름으로 되었다.
이 도로가 추가 확장되면 제주시를 우회하는 주 간선도로로 활용됨으로써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달라진 것은 도로의 공급과 속도위주 즉, 이동성 위주의 정책에서 최근에는 안전을 고려하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시의 경우에도 속도를 제한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기존 시속 70㎞이던 제한속도가 1999년 이후로는 시속 60㎞로 줄어들고 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제주시내 주요도로의 차량 제한속도 조정
3. 교통사고와 안전
제주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관광객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명중시 경향은 더욱 강화되어, 교통에서도 제도적으로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2002교통문화지수 평가에서 제주시가 전국 2위를 하였다. 녹색교통운동, 제주 YMCA, YMCA, 서귀포 YMCA 등 전국 70개 시민단체, 그리고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전 행태, 교통안전, 보행 행태 및 교통 환경 등 13개 지표 항목을 가지고 평가를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보험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2003년 제주 지역의 교통사고는 전국에서 최저 수준을 보이며, 사고율은 책임 보험 가입 차량의 전체 대비 사고가 발생한 차량 비율인데, 전국은 5.2%에 달하지만 제주 지역은 2.8%에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내에서 연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고는 110여명에 이르며, 어린이 교통사고도 10여 명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3. 차고지증명제의 도입
제주시는 전국 최초로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또한, 공영버스, ITS사업과 더불어 제주시의 선진 교통 정책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의 차고지 증명제 틀을 갖추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제주시는 처음 실시하는 것인 만큼 시행착오와 시민들의 부담감도 줄이고자 단계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2007년 2,000㏄급 이상 차량부터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한 뒤 2010년, 1,000㏄미만을 제외한 전 차량에 대해 차고지 증명제 도입을 통해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리고 제주시는 그 동안 제주 국제 자유 도시 특별법에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뒤 많은 노력을 통해 '차고지증명제 시행조례 기초안'을 만들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그 시행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제도화하기 힘들었다.
2007년 2월부터 승용차 배기량 2,000㏄ 이상의 대형 및 고급 승용차에 적용하고, 2009년부터는 1,500㏄ 이상 중형 자동차에 적용한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1,000㏄ 미만의 경차와 무공해 자동차를 제외한 전 차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4. 첨단교통시스템의 도입
현재의 교통 정책은 전적으로 사람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첨단 시스템을 활용하여 인공 지능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주시는 건설교통부가 공모한 지방정부의 ITS사업제안 평가 경쟁에서 선정되어 2001년 첨단 교통 모델 도시 건설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국내 ITS 도입의 활성화, ITS 기술력 향상 및 지자체 ITS 사업의 추진틀 제시 등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었으며, 제주시의 경우는 제주시만이 아니라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한 인프라로서 의미가 있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200억에 이르는 큰 사업을 착수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관련 사업으로 “제주 텔레매틱스 시범도시 구축사업”과 “제주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 그리고 “동적 주행안내시스템(CNS)”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교통]
제주시 용담2동과 도두2동에 걸쳐 있는 제주비행장은 1958년 1월 30일 법령으로 설치되었다. 이때는 제주를 비롯한 서울·강원·부산·광주 등에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제주비행장은 1942년 일본군 비행장으로 개설된 이후 17년 만에 정식 비행장 직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제주비행장은 1957년 10월 활주로 포장이 착공되어 다음 해인 1958년 1월까지 총 연장 1,600m, 너비 30m의 활주로를 아스팔트 화하였다.
1968년 4월에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차차 제반 항공 관계 시설들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교차 활주로가 착공되어 대형 여객기들이 오가는 국제공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부대시설 들이 현대화되지 못하여, 활주로를 제외한 지역의 풀은 관내 초등학교의 지원을 받아 제거하기도 했다.
2005년 현재 활주로는 3,000m×45m/1,910m×45m로 구성되어 있다. 부지는 300만 4816㎡, 운항 횟수로는 년 14만 3000회에 이르는 국제적인 수준의 공항으로 성장하였다. 부지로 보면 부산 김해공항 164만 6474㎡의 2배정도나 되는 크기가 되었다.
노선 운영 측면에서 보면 제주도에 정기 항공 노선은 1948년 10월 30일 대한민국항공사가 교통부로부터 면허를 받아 운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개설되었다. 1일 1회 운항하다가 한국동란으로 스틴슨기 3대 모두가 공군에 징발되어 1년 4개월 만에 정지되었다.
1953년부터 월 또는 주 2회 정도 정기 항공 노선을 부활시키자 차츰 이용자가 증가하여 1957년 2월부터는 제주~서울 노선에 주 4회 증편 운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2년 4월 25일에는 국세 500만환을 체납, DC-3기 3대를 세무당국이 압류하고 그 해 11월 27일에 교통부가 항공 운송 사업 면허를 취소해 11월 30일부터 항공기 운항이 다시 중단되었다.
대한항공공사가 1962년 12월 2일 대한민국항공사가 가지고 있던 항공기를 인수하여 제주~서울 노선에 주 5회 운항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4년 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개 회사가 운행되고 있었고, 2005년 8월 31일에는 한성항공이 운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주항공도 2006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2004년의 제주와 연결된 국내선으로는 제주~서울(김포) 439㎞, 65분, 제주~인천 439㎞, 65분, 제주~부산 299㎞, 55분, 제주~광주 179㎞, 45분, 제주~대구 327㎞, 60분, 제주~여수 327㎞, 45분, 제주~진주 224㎞, 50분, 제주~청주 365㎞, 60분, 제주~목포 149㎞, 40분, 제주~울산 344㎞, 60분, 제주~포항 470㎞, 55분, 제주~군산 264㎞, 50분, 제주-부산(경유)-양양 624㎞, 195분으로 되어 있다.
국제선으로는 대한항공이 제주-부산-동경노선, 제주~동경, 제주~나고야, 제주~오사카, 제주~북경노선을 운항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이 제주~후쿠오카, 제주~오사카, 제주~상해노선을 연결하고 있다.
이용객을 중심으로 보면 1963년 이용자수는 제주탑승(편도) 10,581명이었다. 1982년 입도와 출도를 합하여 계산하면서 통계를 파악한 것이 113만 5635명이었다. 처음으로 100만을 돌파한 해였다. 1990년에는 559만 5637명으로 600만 명에 육박하였다. 2004년 말 현재 1,134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항공 수송 실적
[해운교통]
기록을 통하여 근대해운이 시작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1895년 6월 16일자 관보에는 일본 우선회사 준하호의 각 항구간 항해 정기표가 있다. 기선이었으므로 인천에서 출발해서 제주를 거쳐 부산까지 운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에서 제주는 3~4일이 소요되고, 제주에서 부산은 2일 혹은 3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일본 우선회사 준하호 항구간 항해 정기표
당시 제주시와 육지를 연결하는 방법은 이 기선에 의지하는 것이 절대적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목선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 기선의 항로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완행버스처럼 경유지를 경유하여 제주시에 도착했다.
인천-군산-목포-제주로 왔고, 그 배는 다시 부산으로 가서 제주도로 오고, 그 다음 목포로 가서 인천으로 올라가는 노선을 따랐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로 유배 왔던 김윤식은 『속음청사』에서 “현익호와 창룡호 중 어느 하나의 배가 산지포로 오다가 바람에 쫓겨,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의 우도에 정박해 있다고 들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배라고 들었다. 2월 24일에는 현익호가 가까이 왔지만 목선은 갈수가 없고 윤선 또한 닻을 내릴 수도 없어 오래도록 있다가 또 물러가서 바로 서울로 향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현익호와 창룡호 등이 제주에 입항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김윤식은 편지를 못 부쳐서 몹시 한탄스럽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글을 통해서 당시 운행했던 배 이름이 현익호와 창룡호임을 알 수 있으며, 이 현익호와 창룡호는 1897년 당시 『독립신문』을 참고하면 이미 운행을 위한 광고를 하고 있어서 운행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에는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노선이 운항되고 있었다. 당시 제주도를 향한 각 선박회사들의 배선을 검토하면 각지 상권의 내용과 제주도의 중요성이 나타나 있는데, 이 노선을 이용하여 목포나 부산, 일본의 오사카를 여행할 수 있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제주도에 이르는 항로별 배선표
기선에 의지하여 운항하던 제주도의 항로는 제주시제 실시가 되던 1955년 제주~부산 간 주 6회(2척) 운항되어 1일 1발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주~목포 간도 주 4회(1척)가 운항되었다.
그리고 광복 후 군용선을 개조한 화객선에서 1963년에는 도라지호가 제주~부산 간을 연결하게 되었고, 현대식 여객선의 첫 운항으로 기록되고 있다. 획기적인 발전은 1977년 4월 14일 카페리의 취항이었다. 제주~부산 간을 16시간에서 5시간 단축하여 11시간에 도착하는 도약을 보였다.
2005년 들어서는 여행객들이 여객선을 이용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경향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시간의 단축과 요금이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2004년 말 여객선 항로를 살펴보면, 제주~완도(한일 카훼리 1호, 한일 카훼리 2호, 온바다훼리 1호), 제주~인천(호하마나호), 제주~부산(오리엔트스타2호, 코지아일랜드호), 제주~여수(남해고속카훼리), 제주~녹동(대흥고속카훼리), 제주~목포(뉴씨월드고속훼리, 카훼리레인보우), 성산포~통영(만다린호), 모슬포~마라도(삼영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
제주시의 교통은 제주의 발전과 같이 했다기보다는 제주 발전의 필수 요건이었으며, 제주 발전의 전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육지와의 연결 교통인 연륙 교통으로서 해운, 제주가 시제 실시 이후의 항공 교통은 제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사람을 육지와 일본으로 실어 날라 교육을 시켜주었고, 화물을 육지와 일본에서 제주도로 실어 날라 제주의 발전을 유도했다.
제주 지역 내 교통은 자동차의 증가와 더불어 도로의 공급과 관련이 깊다. 최근에는 도로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제주 지역의 도로는 제주 발전의 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제주 지역성을 훼손[돌담, 해안 파괴]하는 문제와 환경 친화적 도로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문제[생태 파괴와 재해 유발 문제] 등이 있다.
최근에는 관광 발전과 지역 발전의 용량은 항공의 공급량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로 항공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