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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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兆基 |
영어음역 | Go Jogi |
이칭/별칭 | 계림(鷄林),문경(文敬),고당유(高唐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제주. 호는 계림(鷄林). 초명은 고당유(高唐愈)이다. 고을나(高乙那)의 48세손이며 고자견(高自堅)의 3세손이고 아버지는 우복야 고유(高維)이다.
[활동사항]
1107년(예종 2)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남쪽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청백하게 공무를 보았다. 1130년(인종 8) 시어사(侍御使)로 재임할 때 이자겸(李資謙)에게 영합한 관리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다가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으로 좌천되었다. 다시 대관(臺官)이 되어 이자겸의 잔여 세력에 대한 처벌을 여러 자체 제기하였으나 예부낭중(禮部郎中)으로 전직되었다.
1147년(의종 1) 수사공상주국(守司空上柱國)이 되었고, 1148년(의종 2)에는 정당문학판호부사(正堂文學判戶部事)가 되어 지공거(知貢擧)로서 25인의 급제자를 선발하였다. 이어 권판병부사(權判兵部事)·참지정사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를 역임하고, 1149년(의종 3)에 정2품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서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임하게 됨으로써 제주 출신 최초로 재상직에 올랐다.
이 무렵 왕의 총애를 받던 내시 김존중(金存中)에게 영합하였다는 이유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좌천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중서시랑평장사로 복직하였다. 1150년(의종 4) 12월 인사에서는 아상(亞相)으로 물러났고, 1151년(의종 5) 4월에는 아상인 판병부사에서도 밀려났다.
[저술 및 작품]
「진도벽파정(珍島碧波亭)」이란 시가 전해진다.
[묘소]
묘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2464번지 제궁동산에 있다. 고려중서시랑평장사상주국 문경공 고조기 묘비(高麗中書侍郞平章事上柱國 文敬公 高兆基 墓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