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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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箕贊 |
영어음역 | Kang Gich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2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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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21 |
성별 | 남 |
생년 | 1903년 |
몰년 | 1956년 |
본관 | 곡산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18년 3월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월 강기찬은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洙)·고영희(高永禧)·김형수(金炯洙)·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문고 마련을 위해 각자 월 3원씩 갹출(醵出)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였고, 매달 1회 회합하여 공동으로 연구하였다. 동지를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하여 1928년 4월경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 회원들은 공동 구입한 도서를 돌려 읽고 매월 30원씩 모아 공동 연구를 진척시키기로 결의하였다.
1929년 5월 5일 강기찬을 비롯하여 고병희·조대수·고영희·김형수·임상국 등은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問)·생활 향상 등을 취지로 하는 우리계(宇利契)를 조직하고 매월 3원씩 조합비를 3년간 거두기로 하였다.
우리계의 궁극적 목적은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로 발전시켜 조선 독립을 쟁취하는데 있었다. 우리계 계원에는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공무원·실업가 및 도내의 유지들이 망라되었으며 1929년 9월에는 각 동리(洞里)에 야학을 개설하였다.
1930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0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