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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고내리 사지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해 추정해 볼 때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시대 사이에 창건된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지금까지도 ‘절골’, ‘절터왓’, ‘절왓’, ‘정골’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해발 112m의 고내봉 앞으로 이어지는 일주 도로와 하가리로 향하는 아스팔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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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제주인에게 수여되었던 위계제(位階制)의 하나. 고려의 무산계는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文散階)와 대비된다. 이것은 향리, 노병(老兵), 여진(女眞)의 추장, 그리고 공장(工匠)과 악인(樂人)과 함께, 탐라 지역의 성주(星主)와 왕자(王子) 및 추장(酋長) 등의 토착 지배층에게 수여된 위계였다. 고려의 중앙 정부가 탐라민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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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고려 전기 고조기(高兆基)의 묘비. 고조기는 고려 전기 인종, 의종 때의 인물이다. 비신의 높이는 233㎝이고 너비는 80.5㎝이며 두께는 52㎝이다. 비의 전면에는 “高麗中書侍郞平章事上柱國 文敬公 高兆基 墓碑(고려중서시랑평장사상주국 문경공 고조기 묘비)”라고 적혀 있다. 비의 후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릇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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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국의 태자. 본관은 제주. 고을나(高乙那)의 46세손이며 아버지는 고자견(高自堅)이다. 제주고씨의 중시조이다. 후삼국시대에 제주 지역의 향방은 점차 고려로 향하고 있었고, 925년(태조 8)에 이르러서는 고려에 방물을 바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 고말로는 고려가 통일을 달성한 지 2년이 지난 938년(태조 21)에 태조 왕건을 알현하였고, 태조는 탐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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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 성주. 고을나(高乙那)의 45세손이며 고말로(高末老)의 아버지이다. 『제주고씨족보』에 의하면, BC 2337년 고을나로부터 시작된 탐라왕조시대의 마지막 왕으로 5년간(933~938) 재위하였다고 되어 있다. 후삼국시대에 제주 지역은 고려로 향하게 되었고, 925년에 이르러서는 고려에 방물을 바칠 정도로 고려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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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 호는 계림(鷄林). 초명은 고당유(高唐愈)이다. 고을나(高乙那)의 48세손이며 고자견(高自堅)의 3세손이고 아버지는 우복야 고유(高維)이다. 1107년(예종 2)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남쪽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청백하게 공무를 보았다. 1130년(인종 8) 시어사(侍御使)로 재임할 때 이자겸(李資謙)에게 영합한 관리에 대한 처벌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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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사찰 터.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곽지사에 대하여 ‘재주서사십오리금폐(在州西四十五里今廢)’라고 하여 “주의 서쪽 45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곽지사는 이원진이 『탐라지』를 기록할 당시인 1650년(효종 1)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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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발생한 12세기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민중의 항거.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기는 탐라가 고려에 병합되던 12세기부터이다. 이때의 민란은 탐라령의 횡포나 고려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삼별초 정벌 직후 원은 제주도를 그들의 직할지로 삼았는데, 외세의 지배 하에서 탐관 오리의 가혹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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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일대에 있는 옛 사찰의 터. 현재 북촌리 사무소 뒤편은 절터왓으로 불리는 곳으로 현재 대부분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 경작지 바로 옆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는 덤불숲이 있는데 이곳에 사찰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 일대에서는 다수의 토기, 자기, 기와편 등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북촌리 사무소 뒷밭 일대에서는 지금도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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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최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성주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외관의 역할을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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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신창리 해저유적지에서 발견된 금으로 만든 장신구. 일반적으로 금제 뒤꽂이는 뒷머리에 꽂아 장식을 하는 데 쓰였다. 일찍이 낙랑 유적에서 목제로 만든 빗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삼국시대 유적에서는 대모로 만든 것이 발견되었다. 빗을 뒷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하였기에 장신구의 일종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금제 뒤꽂이는 신창리 해저유적(新昌里 海底遺蹟)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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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신창리 해저유적지에서 발견된 금으로 만든 장신구. 일반적으로 팔찌는 팔에 착용하는 치레걸이로 신석기시대 조개 팔찌에서 비롯되었으며 구슬이 성행 후 더욱 많이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팔찌의 재료로는 금, 은, 금동, 청동이 쓰였으며, 백제와 신라에서 착용이 성행하였다. 이 금제 팔찌는 신창리 해저유적(新昌里 海底遺蹟)에서 발견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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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지역에서 1168년(의종 22)에 양수(良守)가 일으킨 민란. 제주 사람들은 제주의 행정 단위가 지방관이 부임하지 않은 도(島)의 위상을 갖는 탁라도(乇羅島) 시기(938~1105년), 이어 외관(外官)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 위상을 지닌 탐라군 시기(1105~1153년)에도 세금을 바쳤고, 잦은 세금 부담에 고달파 불만을 가진 경우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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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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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제주에 파견된 문신. 성종 때에 진사에 급제하여 목종 때 태학박사에 임명되었다. 1007년(목종 10) 고려 조정은 제주의 바다 가운데서 서산(瑞山)이 용출(湧出)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전공지를 보내 조사하게 하였다. 산이 바다에서 솟아 나왔다는 것은 섬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제주도에서는 이 섬이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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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문신. 1164년(의종 18) 차함내전숭반(借啣內殿崇班)으로 송나라에 가서 유기(鍮器)와 동기(銅器)를 헌납하고, 1165년(의종 19)에는 의주판관으로 서북면병마부사 윤인첨(尹鱗瞻)과 상의하여 금나라 대부영(大夫營)에서 빼앗은 물건을 되돌려 주었다. 1168년(의종 22) 탐라의 첫 민란에 해당하는 양수(良守)의 난이 일어났다. 이에 조정은 조동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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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현령을 역임한 문신. 두 차례 탐라현령으로 부임하였고, 그 첫 번째가 기록을 통해 처음 확인되는 제주의 외관(外官)이다. 평생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완산(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의 향리를 지내다가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의종 초에 경산부(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판관으로 부임해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임기를 마친 뒤 개경으로 갔으나, 곧은 성격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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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군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제주를 관할하던 직책. 구당사는 고려 전기 주로 섬 지역을 관할하는 외직(外職)의 하나였다. 탐라구당사는 현령이 파견되는 의종대 이전까지 중앙 정부와 제주를 오가며 탐라를 관할하던 관인이었다. 구당사는 고려가 군현 단위에 외관(外官)을 상주하게 하는 995년(성종 14)보다 1년 앞서는 994년 압록도에 처음으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고려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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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의종 때 제주 지역에 설치된 군의 명칭. 제주 지역이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행정 지배를 받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다. 그러나 그 시점에 대해서는 태조대(918~943)로 보는 견해, 1105년(숙종 10)으로 보는 견해, 의종대(1147~1170)로 보는 견해가 있다. 태조대에 편입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고려가 태조대부터 외관은 파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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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의종 때 제주에 설치된 현의 명칭. 제주가 고려의 지방행정 단위인 탐라군으로 편제되었다가 현으로 개편된 것은 1153년 무렵이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는 "숙종 10년 탁라를 거쳐 탐라군을 설치하였다가 의종[1147~1170년] 때 현령관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곧 탐라현으로의 개편을 의미한다. 『고려사』에서 말한 의종 때는 1153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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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터. 평대리 사무소에서 마주 보이는 맞은편 오르막길이 바로 절동산이라 불리는 곳인데, 지금은 절동산 가운데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그 지형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곳은 그리 높지 않지 않지만 약간 구릉져 있는 형태로 예로부터 절이 있었다 하여 절동산으로 불렸다. 평대리 사지는 이 절동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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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해륜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억불 정책으로 쇠퇴를 거듭하다가 1702년(숙종 28)에 제주절제사 겸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형상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에는 해륜사와 관련해 “주성(州城) 동쪽에 만수사(萬壽寺)가 있고 서쪽에 해륜사(海輪寺)가 있어서 각각 불상은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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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귀화한 송나라 사람. 일명 호종조(胡宗朝)라고도 하며 제주에서는 고종달이라고 한다. 풍수사로 알려진 송나라 복주인(福州人)이고, 고려에 귀화하여 15여 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하였다.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상사생(上舍生)이 되고, 뒤에 저장성(浙江省)에 있다가 상선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 예종의 후한 대접으로 1111년(예종 6) 좌우위녹사 권지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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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고려 전기에 일어났던 두 차례의 화산 폭발. 제주도는 화산 활동을 통해 형성된 지형을 갖춘 지역이다. 제주도의 화산 활동은 역사 시대에도 두 차례나 행해졌는데, 그 시기가 모두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1002년(목종 5)과 1007년(목종 10)이었고, 그 결과 산과 섬이 새로이 생성되었음이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고려사(高麗史)』에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