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24
한자 國立益山博物館所藏靑銅盒
영어공식명칭 Bronze Bowl with Lid of the National Museum of Iks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기양리 104-1]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2013년 4월 30일 -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발굴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6월 27일 -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 제1991호 지정
현 소장처 국립익산박물관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기양리 104-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익산 미륵사지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지도보기
출토|발견지 군산시 미룡동 유적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569-1 일원
성격 금속공예품|생활용품
재질 청동
크기(높이,길이,너비) 2.6㎝[청동합1-1 현재 높이]|5.5㎝[청동합1-2 현재 높이]|10㎝[청동합2 높이]|12.2㎝[청동합2 입지름]|4.4㎝[청동합3-1 현재 높이]|9.2㎝[청동합3-1 현재 지름]|2.8㎝[청동합3-2 현재 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익산박물관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청동합.

[개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國立益山博物館所藏靑銅盒)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6점의 청동합과 군산시 미룡동 유적에서 출토된 3점의 청동합 등 총 9점의 청동합을 말한다.

그 중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청동합 6점은 모두 주물로 만들었으며 두께는 안팎 0.3㎜로 고른 편이다. 거친 겉면을 깎고 다듬어 광을 냈다.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6개의 청동합이다. 6점 모두 다른 형태와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제작자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1층 중앙의 아래에서 첫 번째 심주석(心柱石)의 윗면에 마련된 가로 25㎝, 세로 25㎝, 깊이 27㎝의 사리 구멍 안에서 금제사리봉영기, 금동제사리호, 납유리판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공 유리판 위 네 모서리마다 1점씩 두었고 가장 큰 청동합4는 사리공 서쪽 벽면 가운데 두었다. 북동쪽 모서리에는 1점을 포갰다. 중앙에 사리호를 안치할 것을 계획하고 사리호 주변을 에워싸는 위치에 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군산시 미룡동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합은 조선 시대 움무덤[토광묘]에 껴묻거리[부장품]로 부장된 것으로 뚜껑과 몸체로 구성되었다.

[형태]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1은 뚜껑과 몸체의 모서리를 깎아 들어가듯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위턱 면을 이루게 모죽임하였다. 뚜껑과 몸체의 높이 및 형태가 같은 상하 대칭형이며 뚜껑 상부와 몸체 바닥의 중앙에 지름이 같은 1.9㎝ 크기의 작은 동그라미 무늬가 있다. 녹로 위에서 가질하여 남은 흔적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2는 모서리를 둥글게 한 합이다. 뚜껑과 몸체의 높이 및 형태가 같은 납작한 대칭형이다. 뚜껑 가장자리와 뚜껑의 어깨 부분, 몸체의 배 부분과 바닥 테두리에 새김선이 돌아간다. 뚜껑의 위쪽 가운데와 몸체의 아래쪽 가운데에 작은 동심원 2줄을 새겼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3은 뚜껑와 몸체의 높이 비율이 1 대 2 정도인 원통형이다. 뚜껑 지름이 몸통 바닥보다 크다. 바닥을 뺀 겉은 주름과 같인 가로선이 돌아간다. 뚜껑 상부에도 새겼다. 또 뚜껑 위쪽에는 진주가 붙은 상태이다. 바닥은 평평하며 둘레가 살짝 낮은 굽이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3에는 납 성분이 50% 이상 함유되었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4는 청동함1과 같이 모서리를 각지게 처리하였다. 그러나 몸체의 안쪽 바닥 둘레에는 청동합1과 달리 모죽임 턱을 만들지 않고 그냥 둥그스름하게 처리하였다. 상하부에 문양이 없다. 뚜껑과 몸체의 높이 및 형태가 같은 상하 대칭형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 6점 가운데 가장 크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5는 청동합2와 같이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고 모서리에 턱을 두었다. 뚜껑과 몸의 높이 및 형태가 같은 납작한 대칭형 합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6도 청동합1과 같은 모죽임 합이다. 안쪽 모서리 형태도 청동합1과 같다. 그러나 표면에 꽃무늬를 새겼다. 뚜껑 위 중앙부에는 선이 한 바퀴 돌아가는데 원 안에 활짝 핀 꽃을 새겼다. 뚜껑의 옆면에도 하단에는 연주문(連珠文)이 들어간 띠와 팔메트 느낌의 인동무늬가 시문되었다. 팔메트형 무늬는 금동제사리외호의 하단부 무늬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군산 미룡동 유적 출토 청동합1은 흑청색을 띤다. 동쪽 벽의 감실(龕室)[벽의 안쪽에 물건을 놓을 수 있도록 더 깊게 파 놓은 공간]에서 뚜껑과 합이 한 세트로 출토되었다. 뚜껑[1-1]은 합과 맞닿은 드림부 일부만 남아있다. 완만한 공 모양으로 넓게 벌어진다. 합[1-2]은 아가리와 몸체 일부만 남아 있다. 몸체에서 완만하게 공 모양으로 올라가다가 아가리 부분에서 살짝 바깥쪽으로 더 벌어진다. 두께는 0.1㎝로 매우 얇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군산 미룡동 유적 출토 청동합2는 부분적으로 황동색을 띤다. 뚜껑과 합이 한 조를 이룬다. 뚜껑은 크게 부풀어 오른 곡선형이며 가장 위쪽은 편평하다. 뚜껑 윗면의 중앙에는 버섯 모양의 꼭지[손잡이]가 달려 있다. 뚜껑에 구멍을 뚫은 다음 따로 만든 꼭지를 끼우고 붙였다. 합은 몸체와 다리 부분을 따로 만든 후 4개의 청동못으로 접합하였다. 몸체는 바닥에서 살짝 안쪽으로 기울어 아가리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벌어진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군산 미룡동 유적 출토 청동합3은 흑청색을 띤다. 뚜껑과 합이 한 조를 이룬다. 전반적으로 부식이 매우 많이 진행되었고 형태가 상당히 변형되었다. 뚜껑의 형태는 아가리에서 상부까지 곡선형을 이루며 이어진다. 상부는 평평하다. 뚜껑 윗부분의 한가운데에는 버섯 모양의 꼭지가 부착되었다. 뚜껑에 구멍을 뚫고 별도로 만든 꼭지를 끼워 접합하였다. 합은 굽다리와 몸체 일부만 남아 있다. 몸체와 굽다리 부분을 별도로 만들어서 접합하였다. 몸체와 굽다리를 4개의 청동못으로 고정하였다. 굽다리는 아래쪽이 나팔 모양으로 벌어졌다.

청동합1-1의 현재 높이는 2.6㎝, 청동합1-2의 현재 높이는 5.5㎝, 청동합2의 높이는 10㎝, 청동합2의 입지름은 12.2㎝, 청동합3-1의 현재 높이는 4.4㎝, 청동합3-1의 현재 지름은 9.2㎝, 청동합 3-2의 현재 높이는 2.8㎝이다.

[특징]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1의 뚜껑에 ‘상부달솔목근(上達率目近)’이 새겨져 있어 공양한 사람이 상부[上]의 달솔(達率) 관등에 있었던 목근(目近)이라는 사람임을 알려 주고 있다. 목근(目近)의 목씨(目氏)는 사씨[沙[砂宅]氏]·연씨(燕氏)·해씨(解氏)·진씨(眞氏)·목씨(木氏)를 비롯한 백제의 8대 성[국중대성팔족(國中大姓八族) 귀족 성씨의 하나인 목씨(木氏)]으로 보기도 한다. 안에는 직물 뭉치와 원형을 알 수 없는 유기물 가루가 담겨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 중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청동합2 안에는 금제고리 8점, 향가루 추정 물질 등이 담겨 있다. 청동합3 내부에서는 푸른 녹이 묻은 향가루 추정 유기물이 발견되었다. 청동합4 안에는 유리구슬을 비롯한 4,500여 점이 들어 있었다. 천연진주 640여 점, 대·중·중소·소 금제구슬 350여 점, 금판 2점, 머리 부분이 연꽃 모양인 금못, 금제모자곡옥(金製冒子曲玉) 등이 포함된다. 청동합5 안에는 작은 금괴와 금제화형구슬 16점, 진주 144점, 색유리구슬 200여 점, 목질로 추정되는 부스러기가 담겨 있다. 청동합6 내부에는 삭은 직물과 그 안에 들었던 얇은 금판 1점, 막대 1점, 금제고리 2점, 금제화형작식 8점 등이 들어 있었다.

군산 미룡동 유적 출토 청동합은 부식과 훼손이 심하여 원래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식기 종류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청동합의 용도는 사리를 넣은 그릇이 아니라 공양구이자 공양물을 담은 고급 그릇이다. 형식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공양자가 여럿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청동합1에 백제 관등제의 두 번째 품위인 ‘달솔목근(達率目近)’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명문은 청동합 시주자의 신분이 최상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달솔목근이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희귀성이 높다. 청동합 안에는 금판, 금귀걸이, 금구슬, 유리구슬, 굽은 옥, 호박, 진주, 향으로 추정되는 유기물과 직물 등 다양한 공양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가운데 청동합의 안과 밖에서 수습된 820여 점의 진주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진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진주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백제의 대외 교류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준다. 한편 분황사 사리석함 내 청동합에 대하여 고려 시대 제품으로 이해해 왔으나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백제 청동합고의 양식 비교를 바탕으로 분황사 청동합도 제작 시점을 창건기로 올려 보게 되었다.

군산 미룡동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합은 조선 시대 식생활과 관련된 자료이며, 장례 절차에서 껴묻거리로 사용된 사례가 매우 많다.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식기로 의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조선 시대 장례 문화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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