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전기 화순 지역에 이거한 곡부 공씨의 입향조. 공자(孔子)의 53세손인 창원백(昌原伯) 공소(孔昭)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공완(孔浣)이다. 사성의 벼슬을 지냈다. 화순에 입성하여 살게 되었다....
-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때 화순군 한천면 집강으로 일읍을 수성한 인물. 본관은 능성. 자는 덕서(德瑞), 호는 이섭재(利涉齋). 청계(淸溪) 구희(具喜)의 후예로 아버지는 구본혁(具本赫)이다. 구길모(具吉謨)는 동학 농민 운동 때 한천면 집강이 되어 군수 조존두(趙存斗)와 함께 읍을 수성(守成)하였다. 조정에서는 나중에 가선대부를 증직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김응옥(金應玉)의 아들이다. 김규문(金奎文)[?~?]은 1876년(고종 13) 흉년 때 혼자서 화순현의 전세(田稅)와 포량(砲粮), 잡비를 합하여 쌀 471석과 콩 229석을 모두 대신 납부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널리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878년 김규문에게 사천 현감을 제수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학노. 호는 산북. 아버지는 김진옥이다. 김기태(金冀泰)[?~?]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며 정의림, 김인기와 교유한 인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 도장 마을에 입향한 진주 김씨 입향조. 본관은 진주. 자는 자주, 호는 태산. 진양부원군 김무진의 후예로 아버지는 김홍헌이다. 김철완(金鐵完)[1606~?]은 1636년 병자호란을 피하여 화순군 도장 마을에 입향하였다. 병자호란 때에 이제와 함께 창의하였고, 그 공을 높이 산 관찰사가 천거하여 금천 찰방을 제수하였다. 전라남도 나주 왕곡 신포리, 매산 등...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화(聖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예로 증 공조 판서 문이망(文以望)의 아들이다. 문세인(文世仁)[?~?]은 품성(稟性)이 온후(溫厚)하며 나이 90이 넘었음에도 강장무양(康壯無恙)하니 영조 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유득(有得), 호는 만은(晩隱). 민상백(閔祥伯)의 7대손으로, 증 참판 민소생(閔紹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사 민효원(閔孝源)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민회삼(閔懷蔘)이다. 민사점(閔思點)[?~?]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門人)으로 김굉필, 정여창과 도의로 사귀었다. 단종(端宗) 때 부사직(副司直), 길...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몽뢰(夢賚), 호는 사월헌(沙月軒). 집의(執義) 민회참(閔懷參)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 민제익(閔濟益)이다. 민상동(閔相東)은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총명하여 향시에 열 번 합격하여 문장으로 지역에 알려졌다. 죽은 뒤 학행이 빼어나다고 하여 도신의 계로 1869년(고종 6) 동몽 교관으로 제수하였...
-
근대 화순 지역 출신의 문신. 자는 윤중(允仲), 호는 성재(醒齋). 아버지는 방환종(房煥鍾)이다. 방채규(房采奎)[?~?]는 1893년에 사헌부 감찰을 거쳐 한말에 동복군 주사(主事)를 지내며 ‘성옹정(醒翁亭)’이라는 별서를 경영하였다. 1908년, 1909년 두 차례나 항일 의병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으며 1914년 조선 총독부에서 목배(木杯)를 수여받았다. 1939...
-
개항기 화순 지역에 우거한 문인.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시보(時寶), 호는 관호당(觀湖堂). 할아버지는 찰방 배두유(裵斗有)이고, 아버지는 주부 배서(裵緖)이다. 배상진(裵尙紾)[?~?]은 위정 척사(衛政斥邪) 의식을 실천하여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그 학행을 높이 평가한 순찰사(巡察使) 이영욱(李永旭)으로부터 천거되어 동몽 교관(童蒙敎官)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호조 참판으로 증직된 인물 본관은 달성. 자는 형택(亨澤), 호는 계당(桂堂).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예로 아버지는 배응신(裵應紳)이다. 배충신(裵忠信)은 효우(孝友)가 순독한 데다 학문(學問)을 부지런히 갈고 닦으니, 향당(鄕黨)이 천거하였다. 유생들의 추천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제주, 자는 명우(明宇)이다. 할아버지는 양팽손(梁彭孫)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양응필(梁應畢)이다. 양산욱(梁山旭)[1551~1606]은 임진왜란 때 화순의 유위장(留衛將)으로 단양역까지 진군하여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에게 인솔해 간 군졸을 귀속시키고 군량을 실어 보내는 등 왜군 격퇴의 일익을...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
근대 화순 출신의 관인.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소재(小齋). 교관(敎官) 오한추(吳漢樞)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연수(吳然琇)이다. 아들은 서양화가 오지호(吳之湖)이다. 오재영(吳在永)[1865~1919]은 1907년 광주(光州)에서 9품직에 임용되고 광주부 지방 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09년 보성 군수가 되고 1910년 10월 일제의 강제 병합 후 조선 총독부...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문화. 호는 행당(杏堂). 백천(百泉) 유함(柳涵)의 후손으로 유부(柳溥)의 아들이다. 유봉운(柳鳳運)은 도의를 강론하고 밝혔으며 사물을 대할 때 활연히 깨달음이 있었으며, 일찍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성인의 말씀을 반복하고 의리를 참고하여 지극히 마땅한 데로 돌아가길 구하는 것으로 나의 평생 동안 학문을 하는 중요함으로 삼았...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오(致五), 호는 죽남(竹南)이다. 아버지는 윤우은(尹佑殷)이다. 윤복형(尹福衡)[?~?]은 고종(高宗) 을축년(乙丑年)[1865년]에 경복궁 중건 사업을 시작할 때 밭을 매각하여 상납하고 병인양요(丙寅洋擾) 때에도 전토(田土)를 방매(放賣)하여 양희영(梁禧永), 양정환(梁珽煥), 김인기(金仁基) 등에게 노자를 보급...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 자는 우삼(友三), 호는 인재(忍齋).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윤심암(尹心庵)이다. 윤자익(尹滋益)[?~?]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학문이 해박(該博)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빼어났다. 선업(先業)을 이어 받아 만수정(萬樹亭)을 짓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인택(仁宅), 호는 송암(松庵).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화제(李華齊)이다. 이생후(李生厚)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1702~1772]의 문인(門人)으로 절개가 뛰어나 칠송정(七松亭)을 짓고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다. 증손(曾孫) 이약수(李藥秀)가 귀하게 되어 이조 참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택. 자는 무경(武京), 호는 세심정(洗心亭).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예로, 아버지는 임낙기(林洛基)이다. 임상우(林相雨)[?~?]는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서 도내 선비들이 예조에 천거하여 1834년(헌종 즉위년)에 건원릉(健元陵) 참봉과 같은 해 돈령부 도정을 지냈다. 「도솔산 대참사 고사(兜率山大懺寺古寺)...
-
조선 전기 화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금사(錦沙). 충절공(忠節公) 임팔급(林捌汲)의 후손이고, 순창군(淳昌君) 임중연(林仲沇)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이다. 임치지(林致之)[?~?]는 품성이 곧고 바르며 지기가 고상하며 덕의(德義)를 높이 받들어 귀하게 여겼다. 학문을 갈고 닦음에서도 명석함이 매우 뛰어 나서 임...
-
조선 후기 화순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삼(從三), 호는 송계(松溪). 문헌공(文憲公) 정도전(鄭道傳)의 14세손으로, 양경공(良敬公) 정문형(鄭文炯)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수항(鄭守恒)이다. 정응신(鄭應臣)[?~?]은 사직서 령(社稷署令)을 지냈으며 태인에서 처음 화순으로 들어와 우거하였다....
-
조선 전기 화순으로 입향한 창녕 조씨 입향조. 본관은 창녕. 자는 경지(卿之), 호는 남촌(藍村). 시중(侍中) 대운(大運)의 후예로 아버지는 조여충(曺汝忠)이다. 조국경(曺國卿)[?~?]은 성수침(成守琛)의 문인으로 문학이 순수하고 충효(忠孝)가 돈독하였다. 남전(藍田) 여씨(呂氏)의 약법(約法)을 모방하여 향규 촌약(鄕規村約)을 제정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학모(學模), 호는 영모재(永慕齋). 아버지는 조하필(趙夏弼)이다. 조석우(曺錫佑)[?~?]는 성품이 인자하고 행동이 돈독하며 학문(學問)이 해박(該博)하여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여러 유자들이 호남 고사(湖南高士)라 칭하며 학행으로 천거한 결과 통정대부(通政大夫)가 주어졌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칠원(漆遠). 조대중(曺大中)의 둘째 아들이다. 조수헌(曺守憲)[?~?]은 아버지가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로 화를 만남을 애통히 여겨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폐하였다. 자취를 숨긴 조수헌은 대동산 아래에다 집을 짓고, 책 수천 권을 보관하여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관인. 최홍재(崔弘載)의 현손이고, 최휘(崔撝)의 아들이다. 최언당(崔彦曭)[?~?]은 1728년 무신난(戊申亂)[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少論)이 주도한 반란]이 일어 났을때 난의 괴수 몽필(夢弼)이 죽도(竹島)에 도망하여 숨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로잡아 바치는 군공을 세워 충의위에 제수되었다....
-
조선 전기 화순 지역으로 입향한 문관.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서양거사(瑞陽居士). 아버지는 최윤범(崔尹範)이고, 아들로 최경운(崔慶雲)·최경장(崔慶長)·최경회(崔慶會)가 있다. 최천부(崔天符)[1502~1552] 는 배우기를 독실하게 하고, 행실을 닦으니 고을에서 추앙하였다. 벼슬은 훈도를 지냈으나 셋째 아들 최경회의 공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530년경 전라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사술(士述), 호는 취한(就閒). 아버지는 최홍우(崔弘宇)이다. 최후헌(崔後憲)[?~?]은 기골이 장대하고 행실이 엄정(嚴正)하며 능력이 한 나라를 다스릴 만 하였다. 중국 장수 하문진(河文晋)이 다리를 만지면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되리라.”하고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1635년(...
-
조선 전기 기묘사화를 피하여 전라도 화순 지역에 입향한 문인.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춘영(春英), 호(號)는 도곡(道谷)이다. 학사(學士) 형옹의 후손으로서 충청 병사(忠淸兵使) 형군철(邢君哲)의 5세손이고 아버지는 벽동 현감(碧潼縣監) 자홍(邢自弘)이다. 형세영(邢世英)[1507~1581]은 1519년경 기묘사화의 변을 피하여 나주 남평 우산리 골모리를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