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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658
한자 劉成九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철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유성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1월 30일 - 유성구 의병 궐기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유성구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경기도 수원·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활동 사항]

유성구(劉成九)[1881~?]는 1907년 11월 30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읍 발안장(發安場)[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에서 홍순래(洪順來)의 권유에 따라 진희서(陳希西)·김선여(金先汝) 등과 함께 궐기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한 뒤, 군대를 해산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여 당시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이 봉기하고 있었다. 유성구와 그의 동료들은 수원 발안장에서 화승총을 탈취하고 아재동(雅才洞)에서 총기 구입 자금을 징수하였으며, 1908년 음력 3월 초 산척리(山尺里)에서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수원·남양[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3월 2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15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개항기 항일 의병 활동 사실이 확인되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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