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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해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 해남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행정 편제, 교통·통신, 지방 군제와 임진왜란 그리고 유교문화·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아울러 해남의 목마장 운영에 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다. 해남현(海南縣)은 1409년(태종 9)에 진도군과 합쳐 해진현(海珍縣)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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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일부에 있었던 진도군의 옛 땅. 삼촌면은 영암의 시종면에 있던 진도군이 1409년에 옮겨와 진도군 사람들이 살았던 고장이다. 1437년 진도군 고군면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군의 월경지였다. 18세기에 삼촌면 마을은 14개이며 인구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삼촌면은 “진도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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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조선 초기 지방 행정구역. 고문헌에서 진산현(珍山縣)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진산고성(珍山古城)의 존재와 산이면 일대의 죽산현·산이면·진산리 등의 지명을 통해 진산현의 존재를 역추적할 수 있다. 조선 태종 대 죽산현에서 진산현이 갈라져 나왔다. 죽산현 별개로 산이면 일대에 현 단위의 지방행정 단위가 설치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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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1437년에 조선시대 군현체제에 따라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해진군(海珍郡)에서 해남과 진도가 분군되어 1437년(세종 19) 해남현(海南縣) 치소에 현감을 두게 된다. 해남현은 이후 지금의 형태를 갖추며 1895년 해남군으로 승격할 때까지 그 체제를 유지한다. 해진군은 중앙정부의 공도정책에 의해 1409년(태종 9)에 해남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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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년부터 1437년까지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이 통합되면서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 해남현(海南縣)은 중앙정부의 공도정책에 의해 1409년(태종 9)에 진도군과 합쳐 해진군(海珍郡)이 되며, 1412년(태종 12)에는 치소를 옥산[지금의 삼산면 상가리 계동마을]으로 옮긴다. 이는 고려 말과 조선초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인한 공도정책(空島政策)에 따라 바닷가와 인접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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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1552년·1555년 세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달량진에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하였던 사건. 달량진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수군진이다.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古達島)라 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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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일본 왜선을 크게 격파한 해전. 임진왜란 전쟁 중 일본은 1597년 정유년에 우리나라를 다시 침입한다. 이때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서 탄핵을 당하였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5월 16일에야 풀려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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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왜군과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5월 23일부터 1598년(선조 31) 12월 16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으로...
수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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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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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에 설치되었던 수군진. 갈두진(葛頭鎭)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설치된 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관방은 지리적으로 취약하였으며 제주도민의 진휼(賑恤)을 위한 목적이 강하였다. 당시 제주도민 진휼곡은 나주의 제민창에 보관하였다가 제주도 해산물과 바꾸어 가도록 하였으나 뱃길이 멀어 가까운 갈두로 변경하였던 것이다. 갈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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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달량진(達梁鎭)은 완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동쪽 해변에 위치한다. 달량진은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전라우수영에 편성되었다. 관련 기록은 조선 건국 후인 1406년(태종 6)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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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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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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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개성이나 한양을 연결하였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이동하거나 공문을 전달할 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보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를 원(院)이라 하였다. 이를 합하여 역원(驛院)이라 칭한다. 이칭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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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었던 역. 남리역(南利驛)은 지금의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설치되었던 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역에 소속되었다. 고려 말 왜구로 인하여 폐지되었다가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복설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진도군에서 출발하여 벽파진~삼지원~남리역~적량원~만희원~맹진~별진역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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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과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던 역 녹산역(淥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산면에, 조선시대에는 해남읍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녹산역을 출발하여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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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모래섬 등산진에 설치되었던 원. 등산원(登山院)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해남과 진도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로 조선 후기 등산진에 설치된 원이다. 등산진은 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 목포진과 통하는 나루였다. 등산원은 벼슬아치들이 배나 바람을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등산진은 모래섬[사도, 별칭 마래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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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 육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만희원은 조선시대 한양과 해남지역의 교통과 통신을 원만히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만희원은 “현의 서쪽 12리[4.71㎞]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의 지리지에서는 만희원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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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던 역. 별진역(別珍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남리역에서 맹진을 통하여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해남의 녹산역에서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역이다. 별진역은 지금의 해남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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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에 있었던 옛 나루에 세워진 원(院). 삼지원(三支院)은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 지르는 나루에 세워진 원이다. 해협의 뱃길 거리는 직선으로 약 3㎞에 이른다. 삼지원은 진도군을 왕래하는 중심 나루이자 진도군 관문에 해당하는 중요한 원이다. 삼지원은 벽파진~남리역으로 연결되는 역로 상에 있다. 해남 삼지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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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적량원(赤良院)은 조선시대 남리역과 녹산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을 위하여 설치된 숙소로서, 통행하는 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 적량원은 “현의 서쪽 23리[약 9.03㎞]에 있다.”라고 하였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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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말을 방목하기 기르기 위하여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한 장소. 조선 초기에 중앙 정부는 말을 길러 국용을 조달하고 동시에 중국과 말 무역을 하였다. 전라도는 겨울철에도 춥지 않아서 목마용 풀을 얻기에 용이하였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다 제주도와 인접하여 전라도는 일찍부터 목장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특히 진도와 같이 물과 풀이 풍부한 섬과 바닷가 연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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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쌓은 조선시대 목장성. 송호리 목장성(松湖里牧場城)은 황원의 목마들을 방목하기 위하여 1454년 여러 곳의 수군들을 소집하여 축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해남읍지(海南邑誌)』 등에서 확인되며, 지적도에 흔적이 남아 있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연결된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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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에 1454년 설치되었던 목장. 화원목장(花源牧場)은 1445년(세종 27) 무렵 해남군 화원면에 설치되었고 영암군사가 관리하였다. 성종 무렵에는 1500여 필을 방목하였으며, 중종 때는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까지 옮겨 방목하였다. 1454년(단종 2) 6월에는 황산면 송호리에 목장성을 축성하였으며, 17세기에는 진도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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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된 목장. 황원목장(黃原牧場)은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에 설치된 목장이다. 1445년 건립되었다. 1445년(세종 27) 10월 9일에 하삼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뢸 때 “영암군의 황원곶[黃原串]은 4,000필을 놓을 수 있는데, 거민 400여 호가 바닷가에 흩어져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