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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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舜臣 |
영어공식명칭 | Lee Sunsin |
이칭/별칭 | 여해(汝諧),충무(忠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출생 시기/일시 | 1545년 - 이순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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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6년 - 이순신 식년시 무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이순신 명량대첩 승리 |
몰년 시기/일시 | 1598년 - 이순신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매년 9월 - 해남군에서 명량대첩축제 진행 |
출생지 | 한성부 건천동 -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
부임|활동지 | 전라남도 고흥군 |
부임|활동지 | 전라북도 정읍시 |
부임|활동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부임|활동지 | 경상남도 통영시 |
묘소|단소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 관직 | 삼도수군통제사 |
[정의]
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무신.
[개설]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변란을 겪어야 했던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바다를 지켜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가계]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의 12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이거(李琚)이며 할아버지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었던 이백록(李百祿)이다. 아버지는 이정(李貞)이며, 어머니는 변수림(卞守琳)의 딸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활동 사항]
이순신은 1545년(인종 1)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乾川洞)[현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1576년(선조 9) 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훈련원봉사, 발포진수군만호, 조산보만호,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재임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군관 송희립(宋希立) 등과 회합하여 출진을 결정하였다. 이후 옥포·당포·견한산도·안골포·부산포해전 등에서 연전연승하며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이순신은 정유재란 시에는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계략으로 투옥되었으나 원균이 왜적에게 대패하여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원균이 대패한 이후 이순신은 10월 25일 해남과 진도 사이의 명량해협[울돌목]에서 남아 있는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의 수륙병진작전(水陸竝進作戰)을 무산시켜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명량대첩 이후 수군의 재건에 힘을 쏟던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陳璘)의 함대와 함께 노량해전에서 도망가는 왜군을 뒤쫓아 싸우다 1598년 12월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순신은 시문에도 능하여 시조 및 한시와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남겼다.
[묘소]
이순신의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순신은 1643년(인조 21)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고 1659년(효종 10)에는 남해의 전적지에 비석이 세워졌다. 1707년 충청도 아산에 세워진 이순신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호가 내려졌으며, 1793년(정조 17)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숭배되어 통영 충렬사(忠烈祠), 여수 충민사(麗水忠愍祠), 아산 현충사(顯忠祠) 등에 배향되어 있다.
해남에는 명량대첩의 승전을 기념하는 명량대첩비와 함께 우수영 충무사(忠武祠)에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남 용정사(龍井祠)에도 이순신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