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25 |
---|---|
한자 | 河禹善 |
영어음역 | Ha Useon |
이칭/별칭 | 자도(子導),담헌(澹軒)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전병철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활동 시기/일시 | 1956년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몰년 시기/일시 | 1975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양(晉陽) |
[정의]
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자도(子導). 호는 담헌(澹軒).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과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할아버지는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1848~1916]이다. 아버지는 사와(士窩) 하재도(河載圖)[1869~1931]로, 대대로 남명학의 계승과 수호에 핵심적인 구실을 담당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김회경(金會卿)의 딸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다. 부인은 조용효(趙鏞斅)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며, 그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하우선(河禹善)[1894~1975]은 1901년(고종 38) 8세 되는 해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이 집에 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면우에게 절을 올리고 난 후 “순임금이 우임금의 아버지를 처형하였는데, 우임금은 순임금에게서 천하를 물려받은 것이 옳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면우가 기이하게 여기고 격려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겸재 하홍도의 강학 공간인 모한재(慕寒齋)에서 독서하였다.
1914년 봄 거창 다전(茶田)으로 가서 면우 곽종석에게 제자의 예를 올렸다. 같은 해 겨울에 가서산방(架西山房)에서 벗들과 강학하였으며, 이듬해 봄에 다시 모한재에서 강학을 하였다. 1930년 함안의 일산(一山) 조병규(趙昺奎), 밀양의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봉화 유곡(酉谷)의 권상익(權相翊), 안동 도산면 의인(宜仁)의 동전(東田) 이중균(李中均), 현풍 중부촌(中部村)의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등을 두루 방문하여 평소에 의문스러운 점들을 질의하였다.
1939년 선비들과 모한재에서 모여 수속계(修續契)를 만들었다. 1956년 덕천서원(德川書院)의 원임(院任)이 된 뒤 유계(儒契)를 만들어 동재(東齋)를 건축하였다. 1964년 고을의 선비들과 문하의 제자들이 유계를 만들어 그가 거처하던 곳 옆에 3칸의 사산서당(士山書堂)을 지어 주어 그곳에서 학문을 강론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학문과 저술]
하우선이 살았던 시대는 일제에 의해 주권이 침탈당한 때이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에서도 일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 정신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하우선은 일찍이 안중근(安重根)이 여순감옥에서 사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분강개하여 애도하는 글을 지은 바 있다.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1870~1946]이 그 글을 보고서 칭찬하였으며, 당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또한 1920년 말과 1921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매부인 박낙종(朴洛鍾)이 방문하자 함께 며칠 동안 고금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나라를 잃은 슬픔을 시로 지어 탄식하였다.
1937년에는 고을 선비들과 망국(亡國)의 한(恨)을 씻기 위해 ‘구졸계(九拙契)’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왜경에게 혐의를 받아 진주 수곡(水谷) 조계촌(朝溪村)으로 거처를 옮겨 화를 면하였다. 1943년에는 변산(卞山) 강영만(康榮晩) 및 담원(薝園) 정인보(鄭寅普)와 함께 진주를 유람하고 촉석루에 올라 임진왜란에 대해 담론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문집 11권 5책 『담헌집(澹軒集)』이 있다. 또한 선조인 설창 하철의 실기(實記)와 니곡 하응로의 유집(遺集)을 찬수하여 간행하였으며, 그가 원임으로 있던 덕천서원의 역사를 기록한 『덕천연원록(德川淵源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소는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사산서당의 뒷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고을 선비들의 공론하여 하우선을 위해 매년 석채례(釋菜禮)를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