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11
한자 河陽鄕校所藏古典籍一括
영어공식명칭 A Classical Batch of Heyang Hyanggyo Major Genera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20길 12-5[교리 15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경북향교자료집성』으로 영인 출판
소장처 하양향교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20길 12-5[교리 158]지도보기
성격 고문헌
용도 증빙|기록
발급자 하양향교|하양현감|만동묘 풍천재
수급자 하양향교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하양향교를 운영하면서 작성한 성책 고문서 일괄.

[개설]

하양향교(河陽鄕校)는 교육 기관이자, 조선 시대 하양 지역 재지사족의 공론과 이익을 대변하는 향촌사회 기구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하양향교 및 재지사족에 의해 여러 전적이 생산되었다. 1992년 간행한 『경북향교자료집성』(Ⅰ)에 13종의 전적 자료가 영인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하양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하양향교 내부의 인적 조직과 서원 운영 과정에서 생산된 자료이다. 주로 신분 증명, 사건 및 주요 사안의 기록, 증빙 등의 목적으로 제작·보관해온 것이다.

[형태]

하양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은 모두 13종의 성책 고문서 및 낱장 고문서가 확인되는데, 형태는 다음과 같다.

「하양향교청금록(河陽鄕校靑衿錄)」의 크기는 세로 43.5㎝, 가로 35㎝이며, 1책 50면이다. 「하양향교교임사안(河陽鄕校校任事案)」의 크기는 세로 35㎝, 가로 30㎝이며, 1책 19면이다. 「하양향교임사안(河陽鄕校任事案)」의 크기는 세로 34㎝, 가로 29㎝이며, 1책 8면이다. 「성묘중수시기략(聖廟重修時記略)」의 크기는 세로 26.5㎝, 가로 22㎝이며, 1책 20면이다. 「하양성묘중수시기략(河陽鄕校聖廟重修時記略)」의 크기는 세로 30㎝, 가로 21㎝이며, 1책 25면이다. 「성묘중수시용기(聖廟重修時用記)」의 크기는 세로 26㎝, 가로 21㎝이며, 1책 21면이다.

「통문(通文)」의 크기는 세로 70㎝, 가로 45㎝이다. 「하양현감서목(河陽縣監書目)」의 크기는 세로 40㎝, 가로 35㎝이다. 「향교각양규정절목(鄕校各樣規定節目)」의 크기는 세로 32㎝, 가로 28㎝이며, 1책 10면이다. 「영남경약소절목(嶺南京約所節目)」의 크기는 세로 33㎝, 가로 19㎝이며, 1책 12면이다. 「사직(社稷)」의 크기는 세로 29㎝, 가로 11㎝이며, 1책 12면이다. 「하양환성사결송(河陽環城寺決訟)」의 크기는 세로 52.5㎝, 가로 29.2㎝이며, 1책 72면이다. 「모성재답두안(慕聖齋畓斗案)」의 크기는 세로 29.4㎝, 가로 28.7㎝이며, 1책 7면이다.

[구성/내용]

「하양향교청금록」은 광무[1897~1907] 연간에서부터 1942년까지 작성한 하양향교 교생들의 명단이다. 「하양향교교임사안」은 1684년(숙종 10)부터 1735년(영조 11)까지의 하양향교 교임 190명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하양향교임사안」은 1760년(영조 36)부터 1771년(영조 47)까지 50명의 하양향교 교임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성묘중수시기략」은 1822년(순조 22) 8월 8일부터 12월 1일까지의 공사일지와 용하기(用下記)가 부기되어 있다. 「하양성묘중수시기략」은 1860년(철종 11)의 하양향교 중수에 관한 일지와 각 문중 보조록이 실려 있다. 각 문중의 65명이 9,750냥을 보조하였다. 「성묘중수시용기」는 1860년(철종 11)의 중수 때 비용을 정리한 것이다.

「통문」은 1867년(고종 8) 7월 7일 만동묘(萬東廟) 풍천재(風泉齋)에서 양오당의 문제로 보내온 것이다. 「하양현감서목」은 1871년(고종 12) 9월 28일 하양향교와 영천 임고서원 간의 환성사를 둘러싼 알력을 언급하고 있다. 「향교각양규정절목」은 기사년 3월 하양향교의 재정이 어렵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소요 경비의 절용을 결의하여 만든 절목이다.

「영남경약소절목」은 1897년 서울에 위치한 영남경약소(嶺南京約所)에서 영남 각 고을에 배포한 절목이다. 해당 절목은 다시 각 군의 각 면과 기관에 배포되었다. 본 절목은 그 중에서도 경상북도 하양군에 배포되었다가, 하양군에서 등서하여 하양향교에 재배포된 것이다. 절목은 영남경약소의 ‘행회문(行會文)’, 27개조의 ‘영남경약소봉지절목(嶺南京約所奉旨節目)’, 11개조의 ‘경약소추절목(京約所追節目)’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회문’은 경약소절목의 제정 경위와 의의를 언급하고, 회원으로 의정부참정법부대신 이유인(李裕寅)을 비롯한 57명의 성명이 적혀있다.

「사직」은 하양향교·금호서원(琴湖書院)·남호서원(南湖書院)에서 이루어지는 제향, 그리고 성황발고제(城隍發告祭), 기우제(祈雨祭), 사직제(社稷祭) 때의 진설도와 홀기 및 축문이 함께 엮여 있다. 자료 말미에 을사(乙巳) 2월이 명기되어 있는데, 1845년(헌종 11)으로 추정된다. 작성 주체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양환성사결송」은 1724년(경종 4)에 하양향교와 영천 임고서원(臨皐書院) 간에 환성사(環城寺) 점유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소지·서목·관문·통문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모성재답두안」은 정미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모성재 소유의 전답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하양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은 조선 후기 하양향교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특히 환성사를 둘러싼 임고서원과의 향전은 조선 후기 속사(屬寺)의 존재 양상을 살펴보는데 좋은 사례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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