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동 국용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71
한자 松鶴洞國龍-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송학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일제강점기 - 송학동 국용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12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국용마을 내 12곳지도보기
성격 마을 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14일
신당/신체 입석|감나무|당산나무|팽나무 외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에 있었던 국용마을에서 지낸 마을 제사.

[개설]

국용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에서는 정월 14일 밤에 농악을 하며 마을 내에 있는 12당산에 마을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송학동 국용마을 당산제이다. 국용마을은 광주광역시의 서남단에 있으며, 마을 뒷산인 망산(望山)[높이 270m]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기슭에 있던 마을이다. 마을이 배 모양과 같다고 하여 '배매'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송학동 국용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14일 밤에 12당산을 돌며 밤새도록 농악을 울리며 당산제를 지냈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제사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대동아전쟁 무렵에는 살기가 더욱 어려워져 마을 제사가 차츰 시들해지면서 점차 사라졌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가 한창일 때에 12당산을 모셨으나 정확한 위치와 신격(神格)은 알 수 없다. 다만 자료에 의하면 입석(立石) 2곳, 감나무 1곳, 당산나무 1곳, 팽나무 1곳 등이라는 것만 확인되었다.

[절차]

음력 정월 14일 당산제 전에 유사를 먼저 선정한다. 유사로 선정된 사람은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마련하는데, 이때 유사는 거의 먹지도 않고 궂은 곳의 출입을 삼가는 등 몸을 정갈하게 하였다. 제사 비용은 마당밟이를 통해 충당하였으며, 축문은 따로 읽지 않았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정월 14일 밤에는 밤새도록 농악을 울렸다.

[부대 행사]

제사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마당밟이를 하였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중단된 뒤로 오늘날까지 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광주의 당산제』(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 1993)
  • 「당산제」(광주광역시 향토자료, 2017. 9. 5.)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