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동 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33
한자 雲巖洞鬪爭
이칭/별칭 운암동 전투,운암대첩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1년 5월 19일연표보기 - 운암동 투쟁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91년 5월 20일연표보기 - 운암동 투쟁 종결

[정의]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운구 행렬이 광주직할시 시내로 진입하는 것을 돕기 위해 광주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에 대항해 벌인 투쟁.

[개설]

운암동 투쟁은 1991년 학원 자주화 투쟁 중 진압 부대의 무차별한 폭행으로 사망한 명지대학교 강경대 열사의 운구 행렬을 광주 시내로 들여오려는 광주 시민들과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경찰 사이에서 벌어진 대치 사건이다. 광주 시민과 경찰은 광주직할시 북구 운암동 서광주나들목 근처에서 대치하였다.

[역사적 배경]

1991년 4월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가 명지대학교 학원 자주화 투쟁 도중, 진압 부대의 무차별한 폭행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유가족 및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는 강경대 아버지의 고향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할 것을 결정하였다.

같은 시기, 광주직할시에서는 '5월운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4월 29일 "강경대를 살려내라", "노태우 정부 타도하자"를 외치며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 5월 12일 "노동해방을 위해" 노동자 윤용하가 분신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1991년 봄, 폭력 진압에 의한 강경대의 사망, 이를 뒤이은 분신 정국, 5.18 11주기 추모제 등이 이어지면서 투쟁의 열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경과]

강경대의 운구 행렬은 5월 18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광주 시내로 진입, 전라남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망월묘지공원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라남도경찰국 여관구 국장은 운구 행렬의 시내 진입을 불허하고, 망월동으로 직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고속도로에서 망월동으로 향하는 길만 열어두고 시내 진입로를 봉쇄하였다. 이에 광주 시민과 학생들은 5월 18일 운구 행렬의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광주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이어나갔다.

5월 19일 새벽, 운구 행렬은 광주직할시 북구 운암동 서광주나들목에 도착하였으나 경찰의 저지선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 학생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전투경찰 20개 중대 2~3000여 명의 저지선을 뚫기 위한 전투를 벌였으나, 철제 바리게이트를 치고 다연발 최루탄을 쏘며 공격하는 경찰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대치가 길어지자 인근 주민들은 시위대에게 식수와 김밥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계속된 대치로 지쳐갈 때쯤 4월 29일 분신 이후 20여 일 간 병상에 있던 박승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시위대는 격렬한 투쟁 끝에 경찰의 1차 저지선을 돌파하였으나, 운구 행렬을 막고 있던 2차 저지선에 다시 가로막혔다. 계속되는 대치에도 도로를 열 수가 없자, 시위대는 새로 길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즉, 경찰 몰래 운구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고속도로변의 가드레일을 뜯어내고, 배수구를 메우며, 야산의 나무를 뽑아 임시 우회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경찰이 쏘아댄 최루탄으로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운구 행렬은 학생·시민들이 만들어낸 길을 통해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결과]

1991년 5월 19일 광주직할시 동구 금남로에서는 오후부터 수만 명의 광주 학생·시민들이 모여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 소속 13개 대학 1만여 명의 학생들은 광주교육대학교에서 출정식을 갖고 거리로 진출하였다. 또한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등의 노동자들은 시한부 파업에 돌입하여 오후 2시 '노동운동 탄압 분쇄와 5.18정신계승 노동자대회'를 갖고 광주직할시 동구 금남로로 향하였다.

경찰의 저지로 전라남도청 앞 광장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학생·노동자·시민들은 금남로에 모여 있었다. 광주 시내로 진입한 강경대의 운구 행렬은 밤 9시 50분경 전라남도청이 보이는 금남로사거리에서 노제를 시작하였다. 노제가 끝난 후 운구 행렬과 함께 참가자 대부분이 함께 망월묘지공원로 이동하였으며, 장례식은 20일 새벽 4시경 망월동묘지공원에서 마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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