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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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龍寺 |
영어음역 | Ballyongsa |
영어의미역 | Banry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187[반룡사길 87]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개설]
반룡사는 802년(애장왕 3)에 해인사를 건립할 당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창하였고, 공민왕 때 혜근(恵勤)이 중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원나라 세조(世祖)가 이 절에 내린 방문(榜文)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이 방문에는 일본 정벌을 위해 경상도에 온 원나라 군사들 중에서 절에 침범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자는 처벌한다는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 절은 고령 지역의 반룡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건립경위 및 변천]
반룡사는 『조선사찰사료』「반룡사기」에 의하면 해인사를 창건할 때 애장왕이 해인사로 가기 전에 반룡사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해인사를 창건할 당시 반룡사를 함께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일설에 의하면 반룡사를 실제 개창한 인물은 고려시대 승통 요일(寥一)이라고 한다. 요일이 개경에서 벗어나 반룡사에 정착한 것은 중앙의 정치권력으로부터 멀어진 화엄종단의 부흥을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룡사에 시를 남긴 이인로(李仁老)는 승통 요일의 조카이다. 충숙왕 때에 반룡사에는 체원(體元)이 새로운 주법으로 부임한다. 체원은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가형(家兄)으로 해인사 사간판에 여러 종류의 자료를 남겼고, 『화엄경(華嚴經)』을 사경(寫經)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으로 불탄 반룡사를 사명대사가 중건하였고, 그 뒤 다시 불에 탄 것을 1764년(영조 40)에 현감 윤심협(尹心協)이 대웅전과 요사, 만세루 등을 중건하였다. 그 후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 퇴락한 것을 1928년에 고령군 주사 및 고령군수 서리를 역임한 이봉조가 중건하였고, 1998년에 심검당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활동사항]
반룡사는 고령 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찰로서 지역 사회를 아우르는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반룡사 주지 법륜이 취임한 후 불교대학 개설과 경찰불자법우회를 창립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불교대학은 1기 학생이 70명, 2기 입학생이 150명으로, 수업은 두 개 반으로 나누어 매주 화요일, 수요일마다 1시간씩 3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며, 앞으로 1년 과정으로 심화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 반룡사에는 자연 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마음의 휴식과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산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사 체험은 사찰 음식 체험, 다도·다식 체험, 영어 템플스테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상에서 잊어버린 전통 문화의 향훈과 자연과 하나가 되는 마음 자세에서 본래의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황]
반룡사의 현존 건물은 대적광전[보광전]과 지장전, 약사전, 삼성각,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현재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한 삼존불이 있다. 지장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지장보살이 있고, 약사전은 정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법당에는 석불에 개금불사를 한 듯한 50㎝ 정도 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요사채는 정면 3칸의 팔작지붕 양기와로 되어 있다.
[관련문화재]
1979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반룡사 다층석탑이 있다. 일반적으로 석가여래사리탑이라 부르는 이 탑은 높이 2.4m로, 3단의 기단 위에 1층 옥신을 올리고, 그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옥개석을 여러 층 올렸다. 이런 탑의 유형을 수마노탑이라 하는데,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유행한 석탑 양식이다.
또한 1995년 1월 14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된 반룡사 동종이 있다. 반룡사 동종은 1753년(영조 29) 3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50㎝, 무게는 60㎏이다. 종신에 있는 명문(銘文)에 ‘중종(中鐘)’이란 명칭이 있다. 상부에 용뉴가 있고, 상대에는 범어가 6자 새겨져 있으며, 종신 중앙에 3줄의 띠가 둘러져 있다. 유곽과 당좌는 생략되어 18세기 중엽의 동종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