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1리 마을회관 을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 500m정도 더 들어가면 승주골이 나온다. 이곳은 훌륭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오래전부터 성주골[聖住洞]로 불리었다. 그런데 성주골은 지명에 걸맞게 2대에 걸쳐 11명의 교사를 둔 집안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내산리는 집집마다 선생님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교사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긴 하지만...
내산리는 과거 수백 년간 ‘뜸밭[浮田洞]’이라고 불리우던 큰 마을에 속해 있다. 뜸밭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연미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의 4개 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전동의 남쪽 끝에는 연미산과 채죽...
1894년 9월 재봉기를 선언한 동학농민군은 서울로 북상하기 위해서는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공주를 점령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전봉준이 이끄는 주력 부대와 손병희의 북접 부대가 결합한 동학농민군 연합 부대는 논산에 집결하여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였으나, 2차에 걸쳐 전개된 공주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척왜’와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