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6형제 가운데 셋째로 아버지의 6촌인 남대우(南大佑)[영의정과 의흥부원군에 추증됨]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모는 영일정씨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최후를 마친 남이흥(南以...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세거하던 훈신,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백(誠伯)이다. 아버지는 수군통제사 유형(柳珩)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2년에 황해병사가 되었다. 1623년 황주목사로 있던 중에 백성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는 탄핵을 받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와 다시 등용되어 북변 수비를 위해 장만(...
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