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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613
한자 李勉疇
영어음역 Yi Myeonju
영어의미역 Yi Myeonju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
성별
생년 1818년연표보기
몰년 1871년연표보기
본관 전주(全州)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10남인 덕천군의 13대손이고, 덕천군의 현손인 공주 입향조 이몽경(李夢慶)의 4남 이담(李湛)[580~1642]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이무형(李茂亨)[1793~1861]이고, 어머니는 결성장씨(結城張氏)[1789~1832]이다.

[활동사항]

효심이 지극하여 늘 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출타하여 친구들과 노닐면 그 곳에 따라가 개를 잡아 아버지의 친구들이 흥겹게 놀도록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중병으로 자리에 눕자 변을 맛보며 병의 상태를 살피는 등 정성을 다혔으나 차도가 없었다.

한 의원이 꿩고기 기름을 내어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일러 주었으나 여름이라 꿩을 구할 수 없어 상심하던 차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효심이 가상하니 내일은 꿩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새벽에 꿩 두 마리가 집으로 날아들어 이를 잡아 약으로 써서 아버지의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 후 또 다시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차도가 없자,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내어 아버지에게 먹였다. 그러자 차도가 있는 듯하였으나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상훈과 추모]

이면주의 지극한 효행에 감탄한 유림들이 이 사실을 관찰사에게 알려 1905년 명정을 받아 1906년 효자 이면주 정려(旌閭)를 세웠다. 이면주의 손자인 종9품 부교원 이상뢰(李象賚)[1849~1926] 또한 하늘이 낸 효자로 칭송을 받는 등 2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하였다.

효자로 명정 받을 당시의 입안(立案)에는 충청도의 유생 김태현(金台鉉) 등이 이면주의 효행을 예식원장례경(禮式院掌禮卿) 남정철(南廷哲)에게 알리고, 남정철이 임금에게 보고하여 정려를 내릴 것을 주청하자 임금이 정려를 내리도록 비답한 내용과, 정려를 세울 때 재목과 목수를 관청에서 제공하고 그 자손들의 환곡과 모든 잡역 일체를 면제해 주도록 조치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통정대부비서원승원장례(通政大夫秘書院丞院掌禮) 유인철(柳寅哲)이 쓴 정려기에는 이면주의 효행 사실과 정려 과정이 적혀 있다.

정문(旌門)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에 있으며, 이면주의 5대손 이은팔이 관리하고 있다. 정문은 맞배집으로 안에 ‘효자증구품종사랑중학교교관이면주지문(孝子贈九品從仕郞中學校敎官李勉疇之門)’이라고 쓴 현판이 있고, 정려기와 정려비(너비 43㎝, 높이 144㎝, 두께 20㎝)가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24 지역 수정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변경
이용자 의견
ㅇ* 의당면 용암리는 세종시에 편입되었습니다.
  • 답변
  •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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