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기노래」[수성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192
한자 -[壽城區]
영어공식명칭 Mosimgi-norae|Farmers’ Song|Rice Planting S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서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7년 7월 19일 - 「모심기노래」[수성구] 대구직할시 수성구의 범물동과 만촌동에서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7년 8월 3일 - 「모심기노래」[수성구] 대구직할시 수성구의 범물동과 만촌동에서 채록
채록지 「모심기노래」[수성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지도보기
채록지 「모심기노래」[수성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지도보기
가창권역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성격 민요
기능 구분 농업노동요
형식 구분 교환창|독창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농업노동요.

[개설]

전국 곳곳에서 전승되는 「모심기노래」는 논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지역마다 사설과 선율이 다를 만큼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전승되어 왔는데,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모심기노래」[수성구]는 시간과 작업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설을 구사하며 부른다. 즉 모심기를 시작하는 아침에 부르는 노래, 점심참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 저녁이 다 되어 부르는 노래 등 다양하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대구직할시 수성구의 범물동만촌2동에서 1987년 7월 19일과 1987년 8월 3일 「모심기노래」[수성구]가 채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모심기노래」[수성구]는 원래 일꾼들이 두 패로 나뉘어 소리하는 교환창 형식으로 부르지만, 소리의 현장이 사라짐에 따라 독창으로 재연되기도 한다.

[내용]

수성구에서 채록된 「모심기노래」[수성구]는 시간과 작업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설을 구사하며 부른다. 즉 모심기를 시작하는 아침에 부르는 노래, 점심참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 저녁이 다 되어 부르는 노래 등 다양하다. 특히 범물동에서 채록된 노래는 아침, 점심, 저녁에 부르는 다양한 노래가 채록되었고, 1음절 4자를 기본으로 3자, 5자, 6자 등의 유동적인 사설 구조를 보인다.

먼저, 아침에 부르는 사설은 다음과 같다.

“이 물개[물꼬] 저 물개 다 헐어 놓고 주인네 양반은 어디로 갔소/ 문어야 대장부 손에 들고 첩의 방에 놀러 갔네/ 능청능청 저 비렁 끝에 무정하다 울 오라비여/ 나도 죽어 후승 가서 낭군님부터 섬길란다/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서 열매 맬래/ 이달 커고 훗달 커고 칠팔 월에 열매 맬래/ 서울이라 유다락에 금비둘기 알 낳았네/ 그 알 한 개 날 줬시마 금년 과거 내 할 거로/ 서울이라 유다락에 골목 골목 금줄 치고/ 적은 아기 다 빠지고 큰아기만 다 걸렸네.”

점심에 부른 사설은 다음과 같다.

“밀량 삼당 국로 숲에 연밥 따는 저 처녀야/ 연밥을랑 따는따나 연숭얼랑 꺾지 마라/ 찔레꽃은 장가고 석류꽃은 유곽 가네/ 만인간아 웃지 마라 씨종자바래 장가간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우얀 행상 떠나가노/ 이태백이 본처 죽어 이물 행상 떠나간다.”

저녁에 부르는 사설은 다음과 같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우얀 처녀 울고 가노/ 어린 동생일랑 앞세우고 잘 데 없어 울미 가네/ 해 다 졌네 해 다 졌네 수양산 그늘에 해 다 졌네/ 방긋방긋 웃는 아가 몬 따 보고 해 다 졌네/ 오늘 해가 다 졌는가 골목 골목 연기 난다/ 우리 님은 어디 가고 연기 낼 줄 모르던고.”

[현황]

현재는 「모심기노래」[수성구]를 비롯한 「모심기노래」가 노동 현장에서 불리는 일은 없다. 모심기가 기계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대구광역시에서는 농요보존회를 중심으로 공연화되어 일부 전승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모심기노래」[수성구]는 전형적인 교환창의 가창 방식과 때에 따른 다양한 사설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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