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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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凡勿洞 地神- |
영어공식명칭 | Beommul-dong Jisinbapgi |
이칭/별칭 | 구걸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도희 |
소멸 시기/일시 | 1973년 - 범물동 지신밟기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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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시기/일시 | 2004년 - 범물동 지신밟기 재개 |
놀이 장소 | 범물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
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정월대보름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행하던 민속놀이.
[개설]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제사를 마치고 마을 회의를 개최하고 나서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꾼들이 풍장을 치면서 집집마다 구걸굿[걸립]을 한다. 이를 범물동 지신밟기라 일컬으며, 음력 2월 10일까지 계속한다.
[연원]
대구광역시에서는 지신밟기를 구걸이라고도 하는데, 풍물꾼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풍물을 치고 집주인에게 음식이나 돈을 댓가로 받았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범물동 사람들은 동제를 지내고 나면 마을 회의를 개최하는데, 이때 제물을 음복하면서 지난 한 해의 일을 결산하고 새해의 일을 의논하였다. 마을 회의를 마치면 마을 사람들로 조직된 풍물꾼들은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달래고 한 해의 무탈함을 빌면서 범물동 지신밟기를 하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범물동 지신밟기는 매구[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의 농악기와 양반, 포수, 색시의 잡색으로 구성된 구걸패들이 동네의 집을 돌면서 지신을 밟아 주고 복을 기원하였다. 마을 회의를 할 때 부스럼이 난 사람, 상을 당한 사람은 부정을 타지 않게 스스로 음복을 피하였다.
[놀이 방법]
범물동 지신밟기는 사립풀이, 성주풀이, 조왕먹이기, 용왕먹이기, 거리굿의 순으로 행한다. 사립풀이는 풍물패가 대문 앞에서 풍물을 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사립풀이는 “어루 어루 지신아, 지신아 장군 눌루자, 골목에는 천왕님, 이 집에는 손님, 아침에는 연야소, 저녁에는 닫야소, 이리저리 합하니, 열닷 냥이 되었네, 일 년하고 열두 달, 과년하고 열석 달, 삼백하고 예신 날, 하루 아직같이 점지하소”라고 시작된다. 이어서 지신밟기가 원래 순서대로 연행되고, 마지막에 거리굿을 행할 때는 별다른 사설 없이 풍물만 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범물동 지신밟기는 사람들이 평소 생활에서 바라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사립풀이는 예부터 사람들이 복이 들고 나는 곳이라고 생각한 문을 지키는 신을 달램으로써 집의 복을 비는 것이다. 성주풀이는 집을 지키는 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성주를 달래는 굿이다. 성주풀이는 성주의 힘을 빌어 집 안에 깃든 액운을 미리 막고자 하였다. 조왕풀이는 부엌에서 행하여지는데 부엌 신인 조왕을 달램으로써 일년 내내 식복을 비는 것이다. 용왕풀이는 물을 지배한다고 믿는 용왕을 달램으로써 일년 내내 식수와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자 비는 것이다. 거리굿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잡신들을 달래는 놀이이다. 잡신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횡액을 막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하여진다. 이처럼 범물동 지신밟기는 그 과정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을 효과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현황]
범물동 지신밟기는 1973년부터 범물동 당제를 하지 않으면서 함께 사라졌다. 1987년 대구직할시에서 조사할 당시에도 범물동 지신밟기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었다. 범물동 주민들 스스로 천황굿을 미신이라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지신밟기 또한 제대로 명맥을 이어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4년 범물동 노인회와 풍물계 및 향토회, 향우회 등 수성구 지역 민간단체의 회원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당산나무인 범물동 느티나무[대구광역시 보호수 6-6] 아래 모여 ‘정월대보름 당제 및 지신밟기’ 행사를 열었다. 2004년 행사 이후 범물동 지신밟기는 부활하여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 당제를 올리고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