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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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履露齋 |
영어공식명칭 | Irojae |
이칭/별칭 | 김해김씨 삼현파,조야동,삼현파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로12길 93[조야동 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도성탁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 문중 재실.
[개설]
이로재(履露齋)는 김해김씨 삼현파 군수공 종중에서 파조인 김인복(金仁復)[1457~1527]을 비롯한 일곱 명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다. 이로(履露)는 선조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의하면 '봄에 이슬이 내리면, 군자는 성묘하고 반드시 슬픈 마음을 갖는다"는 문장에서 유래한다.
김인복은 1457년(세조 3)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후에 우후(虞候)[도 단위 지역 부사령관] 벼슬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김일손(金馹孫)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자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전국 각지로 흩어져 은거에 들어갔다. 김인복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서 은거하다가 1527년 사망하였다. 당시에 세상 사람들은 김인복을 ‘인내하며 엎드려 은거하였다’는 뜻에서 ‘인복공(忍伏公)’이라 칭하였다.
김인복의 후손이 북구 조야동으로 입향한 것은 김인복의 8세손인 후남(後南) 김상후(金尙厚)와 아들인 좌승지 김중재(金重載) 때이다.
[위치]
[변천]
이로재는 1941년에 건립되었으나, 최근에 중수하여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지붕을 올렸다. 재실 동편에는 김인복을 비롯한 일곱 명의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형태]
이로재는 미백색 콘크리트 와즙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