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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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觀川齋 |
영어공식명칭 | Gwancheonja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로 179-35[관음동 13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충희 |
현 소재지 | 관천재 -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로 179-35[관음동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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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달성배씨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배석하의 강학당.
[개설]
관천재(觀川齋)는 관천(觀川) 배석하(裵錫夏)[1857~1936]가 만년에 강학하던 건물이다. 배석하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에 일제가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며, 1919년에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등과 함께 한국 독립을 위한 「독립청원서」를 파리에 보낸 파리장서 사건에 참여하였다.
[위치]
관천재는 북구 관음동 135에 있다.
[변천]
관천재는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다.
[형태]
관천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목조 기와집이다.
[현황]
관천재는 현재 사용되지 않고 문이 모두 떨어져 나간 상태로 폐가가 되어 방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