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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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倉洞里遺蹟 |
영어의미역 | Archeological Site of Chungju Changdong-ri |
이칭/별칭 | 충주 창동리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건물지|기와가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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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
소유자 | 국유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건물지와 야철지 유적지.
[개설]
충주 창동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5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충주 용두~금가 간 우회도로 건설공사로 인하여 실시되었다. 이곳은 본선이 통과하는 구간이 아닌 본선과 칠금~중앙탑 간 지방도를 연결하는 나들목을 만들며 확인된 유적이다.
[위치]
충주 창동리 유적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서쪽 부분으로, 북편으로 두물머리를 비롯한 남한강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충주에서 탄금대교를 건너 중앙탑면 갈마 쪽으로 들어서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국도 대체 우회도로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에서 왼쪽 금강사 쪽으로 올라가면 창동리 유적이 나온다.
[형태]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7기, 기와가마 1기, 추정 단야로 1기, 철재퇴적층 1곳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추정 단야로와 철재퇴적층은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에 해당하고, 건물지와 기와가마가 창동리 유적의 범위에 속한다. 건물지는 지형을 따라 배치되어 동향·남향·북향 등 다양하며 시기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발굴된 건물지는 총 7기인데, 2호 건물지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둥 배치가 확인된다.
특히 기단부는 최고 400㎝가량으로 2층의 축대를 하부에 마련하고 있으며, 배수시설을 마련하는 등 특수한 시설(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6호 건물지는 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명편 배치를 보이며, 기단 앞에 너비 70㎝ 내외의 면을 형성하여 건물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관(官)’자명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중심 건물로 추정된다. 또 기와가마터가 있는데, 이는 건물 조영시 이곳의 기와를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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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창동리유적건물지
[현황]
현재 발굴조사가 끝난 후 나들목의 위치를 변경, 설계하고 다시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공사를 마치고 나면 금천창지로 추정되는 위 건물지에 대한 정비계획을 수립, 보존조치를 취할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충주 창동리 유적에서 확인된 7기의 건물지는 경원창이 있던 곳으로 수참판관이 주재하던 장소로 여겨지며, 전국에서도 처음 확인된 중요한 유적이다. 단순한 조선시대 건물이 아닌 경원창과 관련된 건물지로 판단되며, 문헌의 역사적 기록과도 일치하므로 보존조치가 취해져 나들목이 재설계·시공되었다. 이 유적은 남한강 조운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