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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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鏡大師 |
영어의미역 | Great Buddhist Priest Beopgyeong |
이칭/별칭 | 이현휘(李玄暉)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규성 |
[정의]
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승려.
[가계]
속명은 이현휘(李玄暉). 본관은 남원(南原), 시호는 법경(法鏡). 당나라 출신 귀화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덕순(李德順), 어머니는 부씨이다.
[활동사항]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 현 전라북도 남원에서 육두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동군 영각산사의 심광대사에게서 불법을 배운 뒤 무염화상의 문하에서 선법을 공부했다. 898년(효공왕 2) 해인사에서 구족계(승려의 계율)를 받은 후 후백제 지역으로 들어가 무주 일원에서 불법을 수련하던 중 도적떼를 만나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906년(효공왕 10) 당나라로 건너가 도건에게서 선법을 공부하고 924년(태조 7) 귀국하였다.
법경대사가 귀국하자 태조 왕건은 특사를 보내 영접하고 국사로 대우하여 충주 정토사의 주지로 삼아 머물게 하였다. 정토사에 상주하면서 광평시중을 지낸 유권열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충주 호족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부 내륙지역민에 대한 교화에 힘씀으로써 다수의 호족 세력을 태조 왕건의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선법을 널리 펴서 홍림(弘琳), 대덕(大德)을 비롯하여 법예(法譽), 대통(大統) 등 3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학문과 사상]
법경대사는 만상을 천만갈래로 흐르는 개천에 비유하여, 개천물이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비록 차이가 있으나 바다에 들어가면 동일하게 된다고 하여 불성의 동질성을 내세웠다. 또한 모든 인연이란 그 실체가 없으며, 모든 법은 마침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영약과 독초가 함께 숲 속에서 공존하고 감로의 샘물과 수렁의 탁한 물이 땅속에서 같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으므로 이러한 이치를 잘 분별하여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설하였다.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융합하려는 법경대사의 선교융합사상은 왕건의 호족 통합 정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묘소]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에 태조 왕건의 명에 의해 유골을 봉안한 정토사 법정대사 자등탑과 정토사 법정대사 자등탑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