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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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下九岩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in Haguam-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산 10|산 12-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강민식 |
성격 | 고분군|돌방무덤|돌덧널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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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산 10 |하구암리 산 12-1 |
소유자 | 개인소유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위치]
중앙탑면 소재지에서 충주 고구려비를 지나면 하구암리로 들어서면 좌우의 산자락과 능선에 하구암리 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하구암리 고분군은 일찍부터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근까지도 도굴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1992년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하구암리 퉁점 일대를 조사하면서 퉁점 고분군이라 하였다. 1997년 충주박물관에 의한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는 이 일대의 고분군을 능골, 큰골, 도장골, 퉁점Ⅰ·Ⅱ·Ⅲ, 중구로 구분하여 보고하였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1999~2000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2차례에 걸쳐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퉁점Ⅱ 고분군 1기, 큰골 유적 4기의 삼국시대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한편,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는 지표 조사를 통해 400여 기의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이 발견되는 하구암리 일대를 하구암리 고분군으로 일괄하였다. 또한 1992년 이미 누암리 고분군 지표 조사에서 언급한 퉁점마을 뒤쪽 능선에 대한 시굴 조사를 통해 8기의 돌방무덤과 1기의 건물터를 확인하였다.
[형태]
하구암리 퉁점마을 뒤쪽에 있는 퉁점 유적은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 의해 시굴 조사되었다. 시굴 조사의 한계로 정확한 돌방무덤의 제원을 밝히지는 못했으나, 1호분으로 명명된 돌방무덤에 산돌을 이용한 폭 1m의 시상이 조성된 사례가 확인되었다. 또 9호분에서는 폭 1.2m 시상대의 남쪽 바로 아래에서 9점의 유물이 수습되어 무덤의 편년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조사된 퉁점Ⅱ 고분군에서는 신라의 돌방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돌방무덤은 널길이 중앙에 위치한 굴식으로 2차에 걸쳐 시상을 확장하며 추가장이 이루어졌다. 1차 시상은 외곽에 할석을 3~4단 쌓아 축조하였고, 내부에는 할석과 자갈을 채웠으며, 동남편에 두침석을 배치하였다. 2차 시상은 1차 시상에 잇대어 할석을 1열로 쌓아 20㎝ 정도 폭으로 조성하였다. 시상 중앙부에서 널길을 통과하는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인근 누암리 고분군과 거의 유사하다. 보고자는 무덤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6세기 후반경으로 편년하였다.
중부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조사된 큰골 유적에서는 돌방무덤 4기가 확인되었다. 돌방은 평면이 방형과 장방형으로 방형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 3호분을 제외한 돌방무덤은 모두 널길이 마련되어 있는 굴식 돌방무덤이다. 1호분에서는 봉토와 함께 축조한 둘레돌이 원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상은 1호분·2호분·3호분은 장축 방향으로, 4호분은 직교로 배치되어 있다. 3호분과 4호분은 시상을 2차례에 걸쳐 중복 사용되었다. 이 돌방무덤은 누암리 고분군과 하구암리 고분군 조성 이후 충주를 중심으로 점차 토착화하는 지역의 지배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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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암리 고분군의 구조
[출토유물]
하구암리 퉁점마을 뒤쪽에 있는 퉁점 유적에서는 굽다리접시 3점·뚜껑 3점·단지 1점·병 1점·뚜껑 있는 굽다리사발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현상은 누암리 고분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퉁점Ⅱ 고분군에서는 대부분 단각고배가 출토되었다. 단각고배는 표면에 음각문을 새긴 것이 많다. 큰골 유적의 7세기 초로 편년되는 4호분에서는 직구호·유개고배·토제 방추차·개(蓋) 2점이 수습되었다. 7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는 3호분에서는 유개병·완·고배·유개고배·병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고속도로 건설 구간 문화 유적 조사에 따라 확인된 유적은 도로가 건설됨에 따라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시굴 조사를 마친 퉁점마을 뒤쪽의 유적은 현재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하구암리 고분군은 누암리 고분군과 함께 신라의 중원경 경영과 관련된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정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충주의 고대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