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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한편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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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일제의 사법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각 지역에 식민지 사법기관을 설립하여 한국인을 통치하였는데,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도 그 중 하나로 설립되었다. 1894년 형조가 폐지된 후 법무아문(法務衙門)이 설치되고, 다음 해인 1895년 법무부로 개칭되면서 같은 해 7월 「재판소기구법」이 발포되었다. 충주 지역에 근대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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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대열을 이루었으며,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충주 일원에서도 거족적인 민족 독립 운동 소식을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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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운동. 1929년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과 일본 중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광주의 2,000여 명의 학생이 항일 투쟁을 벌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이후 전국적인 학생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해지자 충주 지역에서는 1930년 2월 7일 대소리 장날에 대소원보통학교 학생 3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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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무정부주의 단체. 문예운동사는 무정부주의 운동의 실천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인류의 절대자유와 현 국가 제도의 파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9년 2월 18일 권오순(權五淳)[29세], 안병규(安秉奎)[26세], 김학원(金學元)[25세], 서상경(徐相庚)[20세], 서정기(徐廷夔)[22세], 정진복(鄭鎭福)[25세], 김현국(金顯國)[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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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에서 일어난 면사무소 이전 반대 운동. 1934년 당시 복탄리에 있는 소태면사무소의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새로 짓게 되었다. 이에 양촌리, 야동리, 동막리, 구룡리, 주치리 주민들은 면사무소 개축을 기회로 면사무소가 면 서쪽에 치우쳐 있으므로 야동리 도로변으로 면사무소를 이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가 있는 복탄리와 덕은리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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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독립운동단체. 신간회는 1927년 2월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의 결성이라는 목적 아래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운동 단체이다. 신간회 충주지회는 조선 민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의 실현, 전민족의 현실적 공동 이익을 위한 투쟁, 모든 기회주의 부인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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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오가와 제사공장(小川 製絲工場)에서 일어난 동맹 파업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인 자본가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민족 차별과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자 한국인의 불만은 심화되어 갔다. 1929년 10월 7일 오전 11시경 충청북도 충주읍 오가와[小川] 제사공장에서 일하던 여자 직공 27명은 모두가 늘 교대한 뒤에 먹던 점심을 점심시간이 아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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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신니면의 유일한 사립학교인 용명서당(龍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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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 1910년 제정된 조선총독부 관제 중 경제 담당 부서는 탁지부(度支部)였는데, 탁지부 안에는 조세를 담당하는 사세국(司稅局)과 예산을 담당하는 사계국(司計局)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는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지역의 조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2년 4월 1일 대구, 대전, 개성,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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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청년 단체. 1933년 12월 9일 충주에 거주하던 청년 40명이 충주읍 사무실에 모여 체육의 연마, 경제생활 향상, 사회봉사, 상호친목을 목적으로 중앙청년회를 발족시켰다. 이날 중앙청년회 규칙을 제정하고 회장에 이상습(李相習), 부회장에 김흥태(金興泰), 평의원에 변석은(卞錫銀) 외 6인, 간사에 민세기(閔世基) 외 6인, 고문에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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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사회단체. 충주공립보통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사회적 지원을 목적으로 1926년 3월 3일 설립되었으며,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후원회장은 윤정구(尹政求)가 맡고 있었다. 1928년 충주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추계운동회를 주최하였으며, 교직원을 위로하기 위해 일반 학부형들과 함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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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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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언론 단체. 충주독필단은 충주 지역에서 영업 중이던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 각 지국들의 권위 발휘와 상호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5년 8월 10일 충주의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 각 지국의 기자들은 시천교당(侍天敎堂)에 모여 충주독필단(忠州禿筆團) 발회식을 개최하고 중요 사항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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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행정 자문기관. 조선총독부에서 지방 행정을 원활히 관할하기 위하여 충주면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서 충주면협의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7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에 의거해 면제가 제정되었다. 이후 1923년 2월 15일 충주면이 지정면이 됨으로써 충주면협의원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5월 21일 충주면사무소에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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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청년 단체. 1926년 11월 11일 충주 지역 유림들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을 전파하기 위해 충주명륜청년회를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회원은 5명으로 증가하였으며, 회장은 최돌선(崔突善)이 맡았다. 1928년 11월 15일 충주명륜청년회는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야학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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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단체. 지역 유림들이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의 보존과 더불어 지역의 효자·절부(節婦)를 표창하기 위해 1921년 설립하였다. 1925년 11월 1일 충주명륜당에서 충주군 내의 효자와 절부를 기리기 위한 표창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표창자로는 금가면 절부 유복남(劉卜男), 산척면 열부(烈婦) 엄지북(嚴芝北), 엄정면 효자 유지호(柳志浩), 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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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문화 단체. 충주 지역 유지들이 지역의 문화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표적인 문화단체이다. 1920년 5월 15일 충주 지역 청년 유지 10여 명이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충주삼우구락부 설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설립 당시 설립비와 유지비로 기부된 금액이 1천여 원에 달할 정도로 지역 유지들의 관심이 높았다. 동년 6월 5일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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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 광산 노동자들이 일으킨 동맹파업. 일제강점기 식민지 자본주의 아래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충주 지역 태창(泰昌)광업소의 노동자들 또한 그들 가운데 일부였다. 1936년 7월 18일 충주군 노은면에 있는 야간광업부 태창광업소 소속 노동자 200여 명이 임금 인상과 대우 개선을 요구 조건하여 동맹파업을 단행하였다. 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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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유학생 친목 단체. 충주 지역 유학생들의 상호 친목과 지역 청년들과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9년 8월 18일 충주유학생회 주최, 동아일보 충주지국 후원으로 충주공립보통학교 졸업생팀과 유학생팀이 충주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경기 결과 30대 14로 졸업생팀이 우승하였는데, 당시 야구대회를 구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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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충주읍 행정심의 기관. 읍규칙의 설치·개폐, 세출입 예산의 심의, 사무 검열 등 충주읍의 행정 업무의 심의를 담당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1년 4월 1일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면서 기존의 충주면협의원회를 대체하는 충주읍회가 설치되었다. 충주읍회의원은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으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자격 요건은 읍세 5원 이상을 납부한 남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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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사회 단체. 1932년 만주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2년 2월 20일에서 2월 21일 양일간 만주동포 구제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충주 중앙극장에서 소인극대회를 개최하였다. 입장료는 20전이었으며, 후원은 조선일보 충주지국과 동아일보 충주지국에서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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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주중학교 설립을 위해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조직되었던 후원회. 1938년 6월 충주 지역 유지 유석희(劉錫禧) 등 10여 명이 도지사에게 충주중학교 설립을 요청하였을 때 건설비 20만 원을 모금하면 설립을 인가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유지들은 군민대회를 열고 즉석에서 충주중학기성회를 조직하였다. 모금 활동 결과 1939년 4월 기부 총액이 약 12만 원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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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충주 지역 청년들의 상호 친목 도모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2년 10월 23일 회원 5명으로 구성된 충주청년회가 설립되었다. 1923년 5월 20일 충주군청에서 충주청년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 충주지국이 후원하는 충주청년회 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해 5월 22일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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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학생 단체. 충주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와 충주 지역민들의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1925년 서울에서 유학하던 충주 출신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1925년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충주 지역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정은 7월 28일 신니면 용원리, 7월 29일 노은면, 7월 30일 대소원(현 이류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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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헌병 경찰 기관. 충주 지역에서 식민화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말기 일제의 감독 기관이었던 통감부는 충주 지역에 경비 기관으로 경찰서를 배치하는 것 이외에, 충청북도 천안헌병분대의 일 구역으로 충주헌병분견소를 설치하고 헌병과 보조원을 배치하여 경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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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형평사의 지부. 형평사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