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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청원군청 근처에 있던 청주목 소속의 객관(客官)을 중수한 내력을 이정구(李廷龜)가 기술한 중수기. 청주읍에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객관을 중수하였는데, 그 시말을 이정구가 기술해놓는 글이다. 목판(木版)으로 간행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奎章閣本)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했다. 이정구의 『월사집(月沙集)』 37권, 5~7장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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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옛 청주읍성의 모습을 그린 채색지도. 청주읍성의 형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유이주공(公)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성 시기에 대하여는 확실한 기록이나 근거는 없으며, 다만 1794년(정조 18)에 수원 화성(水原華城)의 축조를 위한 평지성의 사례조사 목적으로 「청주읍성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청주읍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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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이후 영조(英祖)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읍지(淸州邑誌)』. 조선 후기 영조(英祖)[재위1724~1776] 때 청주의 역사·인문(人文)·지리적 내용을 총괄하여 기술한 『청주읍지(淸州邑誌)』로 필사본(筆寫本)이다. 표지 제목을『낭성지(琅城誌)』라 했으며, 제1장 첫째 줄에 읍지(邑誌)라 기록했다. ‘낭성(琅城)’은 청주를 일컫는 이름중의 하나이다. 내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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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에 중국의 주자(朱子)가 『대학(大學)』에 대한 자세한 해설(장구(章句))을 붙인 내용에 혹문(或問)이 첨가되어 있으며, 청주목(淸州牧)에서 간행된 책.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당시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새로운 유학(儒學: 性理學)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두 편을 독립시킴으로써, 『대학(大學)』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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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僧將)인 영휴(靈休)가 청주 상당산성의 역사, 지리지형 등 전반적인 내용에 관해 기술한 책.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이었던 영휴가 1744년 당시 청주 상당산성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문답식(問答式)으로 기술한 책이다.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가 청주 상당산성의 역사적 지리적 사실을 전하고자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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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申洬)[1600~1661]이 1660년(현종 원년)에 청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기근대책용(饑饉對策用) 농업서적. 이 책의 권말 간기에 의하면 “시경자구월하한(時庚子九月下澣)”이라 되어 있어 신속이 1660년(현종 원년)에 서원현감(西原縣監)으로 있을 때, 흉년을 만나 『구황보유(救荒補遺)』를 지어 1554년(명종 9)에 간행하여 배포된 『구황촬요(救荒撮要)』의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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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그의 남편 강득룡(姜得龍)이 출전(出戰)하매 그의 옷에다 실로 십(十)자 표시를 해두었다. 남편이 전사하자, 그녀가 표시한 것을 증거로 남편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예법대로 치렀다. 그 후 청상으로 기거하면서 시부모를 섬김에 효를 다하고, 정절을 지키며 수절하니 이웃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효종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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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에 있는 비석 대좌. 청주시내 중심가인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 동쪽편 아래 화단에 ‘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 선정비(牧使 李敬輿 善政碑)’가 있다. 그리고 이 선정비 오른쪽으로 15m 되는 지점에 머리를 서쪽으로 한 거북대좌가 1기(基) 남아 있다. 거북대좌 윗부분에 비석(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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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오세환의 처 경주김씨의 열녀각. 정려기문에 의하면 오세환의 처 경주김씨는 남편이 병으로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가 발인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25세의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1752년(영조 28) 4월에 정려를 내리고, 그 다음 해에 열녀각을 세웠다. 흥덕구 송절동의 중심 마을인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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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이며, 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뒤에 효종 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협상으로 요동에 있던 조선 군사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고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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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수리시설. 과상이란 주변에 과일 상점이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영조 때 만들어져 최근까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지명만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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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진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곽원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효자 집안이다. 여덟 살 때에 묘소 아래 수리(數里)에 걸쳐 소나무와 참나무를 심으니 후에 숲을 이루고 울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효심에서 한 일이었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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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은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한다. 청주성 점령 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곽장을 목천현감으로 삼았다. 곽장은 이인좌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을 함락하고,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란진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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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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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곽진은(郭鎭殷) 부부의 정려문. 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곽진은과 그의 부인 인천이씨(仁川李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28년(순조 28)에 세운 정려문이다. 상당구 탑동 동산교회에서 현대아파트 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이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시멘트 기단 위에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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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효자 곽진은(郭鎭殷)의 부인이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남편은 곽진은이고, 청주 출신이다. 친정에서 부모에 효를 다하였고, 출가하자 늙고 가난한 시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인천이씨(仁川李氏)는 시부모의 병을 고치고자 머리를 깎아 팔았다고 한다. 인천이씨의 효행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50년(철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인천이씨 효자각은 남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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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구룡사가 있었던 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남악사(南岳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0년(숙종 46)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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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계의(季依)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굉(具宏)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조정(趙玎)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부친이 되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였으며,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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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1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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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의 가담인물로 양성 출신이다. 양성에서 300여 명의 군사를 모은 뒤,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군과 합치기로 하고 청주 경내로 들어와 거짓으로 장례를 지낸다고 하면서 상여에다 병기(兵器)를 실어 청주성 앞 숲속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 1728년 3월 15일에 이인좌 군과 더불어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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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권부언(權孚彦)이다. 1816년(순조 1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으며, 1834년 경모궁(景慕宮)에서 작헌례를 행할 때 통례(通禮)로서 힘을 쏟아 통정(通政)을 가자(加資) 받았다. 관직은 사헌부지평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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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기생 해월의 정려각.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순절한 홍림(洪霖)[1685~1728]의 첩실이었던 기생 해월(海月)의 절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해월은 이인좌의 난 때 홍림이 희생되자 반란군에게 애원하여 그의 시신을 찾아 장사를 지냈다. 원래 홍림과 함께 죽을 마음이 있었으나 뱃속에 유복자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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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형 김환(金桓)과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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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국서(國瑞)이다. 청주 출신으로 김인로(金仁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달현(金達玄)이고, 아버지는 김유성(金維城)이며, 어머니는 신진문(申進文)의 딸이다. 부인은 최일주(崔一柱)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 하였다. 급제 당시 왕세자가 춘도기 유생(春到記儒生)의 시험을 춘당대(春塘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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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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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김학성(金學性)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형제들이 모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고 수일동안 연명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시묘살이를 했으며, 넷째 아들이면서도 정성을 다했다. 김병위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75년(고종 12) 청주 영장(營將)이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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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숙종 때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본래 충직하였으며,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반란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자 지팡이를 이끌고 나아가 반란군을 향하여 “네 어찌 감히 국은(國恩)을 잊고 이에 이르렀느냐” 하고 호령하다가 살해당하였다. 1763년(영조 39)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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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청용리에 있는 김상남과 그의 며느리 김해김씨의 정려각.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반란군의 진영에 뛰어들어 반란군의 불충을 꾸짖다 희생된 김상남의 충절을 기리고,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살린 김상남의 며느리이자 김여산(金如山)의 부인인 김해김씨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883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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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청주 출신이다. 2세 때에 생모(生母)가 돌아가셨다. 14세에 종가(宗家)로 입양(入養)되었으나 항상 친부를 잊지 못하여 꿩과 토끼를 잡고 생선을 낚아 봉양하였다. 효행이 뛰어나 향리에서 여러 번 영문(營門)과 조정에 상신(上申)한 바 있으나 정려(旌閭)되지 못하고 1828년(순조 28) 그 효행이 인정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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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다. 품성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실속이 없으면서 뽐냄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는데 조금도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 상을 일찍 당한 것이 한이 되어 부친상 때에 상청(喪廳)을 함께 배설하여 삼년상을 치렀다.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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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어머니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할 때였다. 무신란의 소식을 접하고는 상당성(上黨城)에 나가 역적들을 토벌하고, 그 공으로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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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충신이다. 의병 17인을 이끌고 역도의 무리 중에서 군교(軍校) 한진흥(韓震興)을 베고 역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당초에는 녹훈에 이름이 빠졌으나, 1788년(정조 12) 무신년에 종정(從征)한 장사(將士)로서 생존한 사람과, 의를 지켜 순국(殉國)하였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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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량경(亮卿)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성천부사를 역임한 김언(金琂)이고,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김낙서(金洛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부인은 이후응(李後膺)의 딸 전주이씨이다. 충주 출신으로 1654년(효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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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신.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 절개를 지킨(節臣) 사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기오(箕吾)이고 청주 출신이다. 비안현감(比安縣監)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며,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의 종제이다.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훈련원(訓練院) 첨정(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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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남편은 김여산(金如山)으로 청주 출신이다. 김여산의 처로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남편의 병환이 위급하자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을 치료하였다. 아들 아홉형제를 선도하였으므로 여러 번 쌀과 고기가 하사되었다. 1883년(고종 20)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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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복경(福景)이다. 집이 비록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서 드시게 하였으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손가락을 자른 피로 3일간 목숨을 연장시키기도 하였다. 마침내 부친이 죽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187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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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계술(季述), 호는 청호거사(淸湖居士)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냈고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증직된 김홍경(金洪慶)이며, 숙종조의 우의정을 지낸 김우항(金宇杭)은 그의 형이다. 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 증조할아버지는 김진선(金盡善)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며, 장인은 절제사(節制使)를 지낸 신득수(申得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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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계묘에 무과에 등과하여 두루 무반직을 역임했다. 1605년에 무겸 선전관(武兼宣傳官) 직책을 맡아 근시(近侍)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박천군수(博川郡守)로 있으면서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적과 대치하던 중 갑자기 목에 병이 생겨 군중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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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유인(猶人)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치기(金致基)이며, 어머니는 신담(申澹)의 딸 고령(高靈)신씨이다. 생부는 김치서(金致瑞)이고, 생모는 이사검(李思儉)의 딸 한산이씨이다. 할아버지는 김승노(金承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규(金槼)이다. 부인은 이인정(李寅挺)의 딸이다. 1805년(순조 5) 성균관에서 공부 중 문과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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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계인당(繼忍堂)이다. 김형집(金亨集)의 아들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학문에 심취하여 문장이 세상에 뛰어났고, 타고난 천성이 순효(純孝)하였다. 부모가 병이 깊어지자 간호를 극진히 하였고, 엄동설한에도 죽순을 구하여 시봉(侍奉)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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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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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목사(牧使)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하니 역도의 무리들은 이인좌를 대원수라 칭하고, 신천영(申天永)은 병사(兵使), 권서봉(權瑞鳳)은 목사로 가칭하여 청주를 쉽게 점령해 버렸다. 청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들은 김천장은 진천 방면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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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효우(孝友)가 지극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자 그 해 3월 18일 발군(發軍)하여 적당을 소탕하기로 마음먹고 경기도 안성 죽산으로 향하여 3일간 머물렀으나,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 충절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어 충신문(忠臣門)을 세워졌고 아울러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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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무관. 1725년(영조 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에 역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벼슬이 병사(兵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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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돈령(敦寧) 김복원(金復元)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행이 뛰어났고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삼재체용도(三才體用圖)」를 만들었으며, 암행어사김명진(金明鎭)이 이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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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인 김호철와 함께 형제가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잘라 병을 치유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뒤 사람이 그 정문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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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순조(純祖) 임금 때 사람으로 효성(孝誠)이 극진(極盡)하였다. 부친이 신체가 부어오르는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백약(百藥)이 듣지 않아 걱정하던 중 주변에서 잉어를 써보라 하기에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썼더니 차도가 있었다. 부모가 노환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홍시를 먹고 싶다고 하므로 친구 집이 있는 문경(聞慶)까지 120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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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동생 호설은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이름이 높았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자른 피로 병을 치유하였다. 그 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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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孝子).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사인(士仁), 호(號)는 용암(勇菴)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득규(尹得圭)의 딸이고,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우섭(洪友燮)의 딸이다. 태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부수찬(副修撰)과 수원목사(水原府使), 삼도방어사(三道防禦使), 병조판서(兵曹判書), 체찰사(體察使)를 지낸 김희량(金希亮)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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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김공예(金公藝)의 현손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얼굴과 모습이 웅위하고 힘이 장사였다.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인조 임금이 공주로 피난 갈 때 왕을 호종(扈從)하였던 공으로 선전관(宣傳官)에 특별히 제배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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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동생 김규(金糺)와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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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청주 출신으로 1665년(현종 6) 을사년 무과에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관직이 군수에 이르고 3개 군을 두루 거쳤으나 물욕이 없어 가족들의 배고픔을 면치 못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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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안정(安定)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아버지는 나인(羅紉)이고, 어머니는 조찬(趙璨)의 딸 임천(林川)조씨이다. 할아버지는 나윤충(羅允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나빈(羅濱)이며, 문과에 합격하여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낸 나만기(羅萬紀)와 나만원(羅萬元)의 동생이다. 부인은 민건(閔楗)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653년(효종 4) 계사년 문과(文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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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회재(繪哉)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한고(羅漢皐)이고, 어머니는 이세현(李世賢)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나일진(羅一鎭)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나치학(羅致學)이다. 부인은 신필록(申必祿)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실시된 문과 식년시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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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이다. 할아버지는 남식(南烒), 증조할아버지는 남타(南柁)이다. 아버지는 남일성(南一星)이고, 어머니는 권박(權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59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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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군망(君望)이다. 아버지는 남응호(南應浩)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등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다. 관직이 군수(郡守)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 공을 세워 영국원종공신 1등(寧國原從功臣一等)에 녹훈되었다. 봉명리의 후손 남태희(南台熙) 댁에 병자호란 당시 사용하던 보검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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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부모에 지극한 효성을 보여 여러 번 천거되고 벼슬이 증직되었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字)는 은여(隱汝)로 개국공신 강무공(講武公) 남은(南誾)의 14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학령(南鶴翎), 할아버지는 남의관(南義寬), 아버지는 가선대부내무협판(嘉善大夫內務協辦)에 증직된 남기묵(南紀黙)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빈궁하였으나 효성이 뛰어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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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무신란(戊申亂) 때 순절한 충신. 1728년 무신란 당시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군(叛軍)의 회유를 물리치고 순절하여 충절로 이름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수백(壽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남홍달(南弘達), 할아버지는 증사복시첨정(贈司僕寺僉正) 남유경(南有慶),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남두명(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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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이양호(李亮浩)[1805~1823]의 부인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각.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의 효자 이양호의 부인인 남원윤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1년(철종 2)에 세운 정려각이다. 청주시내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향으로 가다 지북교차로에서 좌측의 목련공원길로 약 2㎞ 가량 가면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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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강무공(剛武公) 남은(南誾)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등제하여 관직에 나가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고, 최고 관직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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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교하(交河)이며, 자는 여화(汝和)로 청주 출신이다. 병자호란 때 아우 노극시(盧克時)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의 진에 이르러 싸웠으나 관군이 크게 무너지므로 단삼(單衫)에 혈서하여 말에 붙이고 형제가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말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혈서에 ‘군신의 죄가 중하여 처자와 인연을 끊는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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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초자는 신중(愼仲), 자는 여림(如林), 호는 한원(漢源)이다. 아버지는 진사 노명흠(盧命欽)이다. 영조(英祖) 때 영의정이었던 홍봉한이 청주목사로 재직할 당시인 1742년(영조 18)에 실시된 청주 백일장에서 6살의 나이로 장원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홍씨 일문의 자손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1765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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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죽정(竹汀)이다. 교하노씨(交河盧氏) 경원군파(慶原君派)의 인물로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 일대였다. 아버지는 노극리(盧克履)이고, 할아버지는 체화당사에서 제향하는 노종원(盧從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노경기(盧景麒)이다. 장인은 조식(趙湜)과 송희원(宋希遠)이며, 아들은 노서(盧序), 형은 노영한(盧英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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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노계원(盧繼元)의 증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 병환에 한겨울임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공양(供養)하였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아버지를 소생시켜 생명을 2년이나 연명시켜 드렸다.이에 사람들이 그 효성을 칭송하였고, 조정에 알려져 1729년(영조 5) 복호(復戶 : 조선시대 충신·효자·절부(節婦) 등에게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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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대해(大海)이며, 호는 사지당(四知堂)이다. 경원군파(慶原君派) 인물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체화당사(棣華堂祠)의 배향인물인 노일원(盧一元)이며, 형으로 노준(盧浚)과 노척(盧滌)이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청주에서 은거하였다. 인조 대에 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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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조선후기 청주목사 서유민의 선정비. 조선 후기에 청주목사를 지낸 서유민이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관청건물을 보수한 선정을 기려 1842년(헌종 8)에 세운 비석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중앙공원(中央公園) 내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높이 141㎝, 폭 43㎝, 두께 15㎝의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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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경기도 양성 출신이다. 무신란에 이인좌(李麟佐) 군의 진용도위(進勇都尉)로 3월 15일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1685~1728]을 살해하고 청주성을 장악하는데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는 대원수를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고 반군을 편성한다. 이때 목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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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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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진구(閔鎭龜), 할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 증조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 외할아버지는 홍호(洪鎬)였다. 형으로 민약수(閔若洙)와 민정수(閔正洙)가 있었으며, 아들은 민백유(閔百有), 민백만(閔百晩), 민백익(閔百益)의 3형제를 두었다. 통덕랑(通德郞)으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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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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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이견(而見)이다.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으로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이고, 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이다. 동생으로 민진구(閔鎭龜)와 민진혼(閔鎭混)이 있었으며, 두 아들을 두었다. 1678년(숙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도사(都事)와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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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관리.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음사(蔭仕)로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발하자 청주의 반란군들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사로잡혔다. 창의(倡義)로 인하여 가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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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광안(閔光顔)이고, 할아버지는 민목견(閔木絹)이다. 형은 민태석(閔泰碩), 동생은 민태항(閔泰恒)이다. 1705년(숙종 3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과 군수(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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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정려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현기(宋鉉器)의 부인인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5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이 정려문은 마을 입구 공터의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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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정려각. 박동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던 중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러한 박동명의 충절을 기려 1709년(숙종 35)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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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창의사.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사호(士毫),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이다. 박민웅(朴敏雄)은 부사 박원진(朴元震)의 손자이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붕익(張鵬翼)과 이봉상(李鳳祥)[1676~1728]이 각각 국사(國士)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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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 인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언백(彦伯)이다.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의 아우이고,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박원진(朴元震)이다. 임진의병장 박춘번(朴春蕃)의 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무예가 뛰어났으나, 무과에 등과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에 어사 김시형(金始炯)이 역사(力士)로 천거하였으나 탁용(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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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혜백(惠伯)이며, 호는 호은(湖隱)이다. 거주지는 흥덕구 강서동이었으며, 아버지는 박세경(朴世卿), 할아버지는 박이진(朴以震),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명(朴定命)이다. 형으로 박민창(朴敏昌), 동생으로 박민호(朴敏昈)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남학한(南鶴翰)이다. 1721년(경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며, 1725년에 증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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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나주(羅州)이며, 자는 세숙(世叔)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박제(朴悌)이고, 동생으로 박익한(朴翊韓)과 박일한(朴一韓)이 있었다. 1660년(현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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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수의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 박우현의 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전투에서 전사한 박우현의 묘소로 청주시 수의동 도장골 마을 왼쪽 청룡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박우현은 1572년(선조 5) 지금의 강서면 수의리 도장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의 의병진에 합류하여 청주성 북문 밖에서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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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후이(厚而)이다. 승지(承旨) 박순원(朴舜元)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창동(朴昌東), 할아버지는 박체소(朴體素)이다. 박계환(朴啓煥)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외할아버지는 유언침(兪彦琛)이다. 1771년(영조 47)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4인(人)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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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향(聖鄕), 호는 농아재(聾啞齋)이다.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 출신 타고난 기개와 큰 도량(度量)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담력이 있었다.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였고, 의분(義憤)이 대단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성 또한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일명 무신란) 청주를 주 무대로 난을 일으키자 당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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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청주 우후(虞侯)로 있던 박종원(朴宗元)은 무신란으로 청주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투항하여 반란군의 영장(營將)이 되었다. 박종원은 이인좌(李麟佐)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으로 진격하여 함락하고, 4, 5초(哨)의 병력을 거느리고 안성 청룡산 가지곡(加之谷) 대촌(大村)에서 죽산의 반란군이 오기를 기다리다 관군에게 발각되어 전투 끝에 현지에서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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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청주 출신이며, 그의 부친은 판서(判書)로서 나이가 100세에 이르렀는데 아들에게 부축을 받아 조석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상고(喪故)에 노후(老後)임에도 여막(廬幕)에서 3년을 보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효행으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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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孝婦).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김대일(金大鎰)이고 남편은 박준덕(朴峻德)이며, 시아버지는 박돈화(朴墩和)이다. 박준덕의 아내로 시부모께 극진히 효도를 하였다. 시부모 상을 당하자 여막(廬幕)에서 3년을 지냈으며, 남편이 병으로 앓을 때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인해 효열(孝烈)로 정려되었다. 남편 박준덕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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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임진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현손으로 삼대 창의(倡義)의 충절을 자랑한다. 어릴 때 『삼국지(三國志)』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를 외우고 감상하길 즐겼다. 1727년(영조 3)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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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여우(汝雨)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청주에 처음 정착한 장연현감(長淵縣監) 박계달(朴季達)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안검(朴安儉), 할아버지는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낸 박천귀(朴天龜)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박태장(朴泰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71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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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 출신으로 소과와 대과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숙길(夙吉), 호는 월탄(月灘)이다. 밀성군(密城君) 박광영(朴光榮)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박정직(朴廷稷)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죽산박씨(竹山朴氏)로 정랑(正郞) 박지문(朴之文)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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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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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사빈(士彬)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린(朴廷麟)[1607~1655], 할아버지는 박세대(朴世大), 아버지는 박수의(朴守義)이다. 어머니는 유시관(柳時觀)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아내는 김옥(金沃)의 딸 안동김씨이다. 1723년(경종 3)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7명 중으로 하나로 합격하였다. 영조(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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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사이(士邇)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호(朴廷虎),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증직된 박수기(朴守基),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생원(生員) 이양진(李陽進)의 딸이다. 몰년(沒年)에 대해 다른 기록에는 1764년(영조 40)이라 한 곳도 있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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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의 세거대족(世居大族) 출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초명(初名)은 치원(致遠), 자는 사이(士邇), 호는 읍건재(泣愆齋)·손재(巽齋)이다. 기묘사림으로 활약하던 박훈(朴薰)[1484~1540]의 7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표(朴廷彪)[1618~1662],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이다. 아버지는 감역관(監役官) 박수기(朴守基)이며,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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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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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노론의 대표적 인물.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계심(季心), 호(號)는 일휴(逸休)로 강수(江叟) 박훈(朴薰)[1484~1540]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참봉 박세증(朴世拯)의 아들로 외할아버지는 이여절(李汝晢)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6인으로 합격하였다. 1711년 가주서(假注書)를 시작으로, 부사정(副司正),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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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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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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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당상관에 오른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 자(字)는 문거(文擧)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할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 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 삼촌은 변시익(卞時益)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득윤(李得胤)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국시(宋國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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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에 있는 불상. 보살사의 중심 법당인 보살사 극락보전 내에 수미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봉안된 이 소조아미타삼존불은 1683년(숙종 9)에 법당 건물이 중건될 때 함께 봉안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상호가 선이 굵고 원만한 표정이며, 몸의 양감과 대의의 탄력 있는 주름선 등이 잘 어우러져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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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에 있는 괘불. 하단에 쓰인 묵서명 ‘숭정 23년’으로 보아 1649년(인조 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위에 보살과 제자, 사천왕 등이 시위하고 있는 영산회상도의 탱화이다. 본존상은 우견편단의 상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키 모양의 광배가 있다. 영산회괘불탱은 198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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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었던 서원. 청주진사 나성운(羅星運) 등 사림의 공론에 의해 1702년(숙종 28) 청주목 산내이면 월오동리(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 건립되었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을 주향으로 하고, 하은(霞隱) 신용(申涌), 종산 신집(申潗), 권상(權常)[1508~1589] 등 4위를 제향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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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영에 세워졌던 건물이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베풀어주라’는 뜻으로 건물의 명칭을 삼석당(三錫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英祖)년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廨), ‘삼석당, 십이간(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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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삼충사의 사적비. 1731년(영조 7) 표충사(表忠祠)의 건립관련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상당구 수동의 표충사(表忠祠) 내 표충사(表忠祠) 본전(本殿) 오른쪽에 있다. 방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246㎝, 폭 95㎝, 두께 38㎝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石)]을 얹었다. 전서(篆書)로 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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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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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청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서유민은 1821년(순조 21) 천릉도감(遷陵都監)의 감조관(監造官)으로 임명되었고, 1836년(헌종 2) 안주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838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제수되었고, 이어 청주목사(淸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청주목사로 재직중인 1840년 서유민은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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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복(宋煥復), 할아버지는 송헌규(宋憲圭), 아버지는 송흠시(宋欽時)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헌명(李憲明)이다. 1845년(헌종 11)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6인(人)으로 합격하였다. 1845년 대과 합격 후 가주서(假注書), 1848년 정언(正言), 1850년(철종 1) 교리(校理)·수찬(修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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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군식(君式), 호(號)는 안소당(安素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안악군수(安岳郡守)를 지낸 송세훈(宋世勛),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송남수(宋柟壽)이다. 아버지는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지내고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에 증직된 송희진(宋希進)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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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남곡(南谷)이다. 청주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송흠학(宋欽學)의 아들로 송흠락(宋欽樂)에게 입양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세(宋煥世), 할아버지는 송택규(宋宅圭), 외할아버지는 이낙배(李樂培)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시(增廣試)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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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성백(誠伯), 호는 문도재(聞道齋)이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 입향조(入鄕祖)인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찬성(贈贊成) 송응기(宋應期)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송방조(宋邦祚)로 송시열(宋時烈)의 부친인 송갑조(宋甲祚)와 형제이며, 아버지는 송시염(宋時琰)이다. 1659년(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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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淸州)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낙원(宋洛源), 할아버지는 송명상(宋明相), 아버지는 송환옥(宋煥玉)이다. 1816년(순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14인으로 급제하였다. 1821년 정언(正言)·장령(掌令), 1827년 이조좌랑(吏曹佐郞)·지평(持平), 1828년 경기도사(京畿都事)를 지냈다. 1831년 지평으로 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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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중겸(仲兼)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송재은(宋載殷)이며, 할아버지는 송도정(宋道鼎)이다. 아버지는 송일렴(宋一濂)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로 정언(正言) 정최행(鄭㝡行)의 딸이다.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로 참의(參議) 김종언(金鍾彦)의 딸이다. 1837년(헌종 3)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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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송상현 관련 조선시대 고문서들. 1592년(선조 25년) 동래부사로 재임중 왜군에 맞서 목숨을 바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의 업적을 알려주는 여산송씨 충렬공파 종중 소유의 문서들로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를 포함하여 5건 10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유물들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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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한금섬(韓金蟾), 이소사(李召史)의 정려문.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본래는 1595년(선조 28) 송상현만 정려되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두 소실이 정려됨에 따라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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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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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성양(聖養)이고, 거주지는 문의(文義)였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송득규(宋得圭)이고,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이규형(李奎衡)이다.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지연(李志淵)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에 식년문과(式年文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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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맹겸(孟謙)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철규(宋徹圭),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김이정(金履禎)이다. 1843년(헌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 21위로 급제하였고, 철종 초에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수찬,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1856년(철종 7) 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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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의 영산신씨 충익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로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2005년 2월 8일부터 2005년 3월 31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및 기탁문화재 특별전’에 전시되기도 한 이 문서들은 공신교서와 신경행 및 그의 후손에 관한 문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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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중함(仲咸)이다. 신명구(申命求)의 아들로, 생부는 신적구이다. 청주에서 거주하였고, 1834년(헌종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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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퇴수재(退修齋), 강암(彊菴)이다. 아버지는 신세제(申世齊)이고, 할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다. 형으로 신건(申湕)이 있었으며, 부인은 여산이씨(礪山李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 승문원의 관직을 두루 거쳐 가선대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과 정헌대부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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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택경(澤卿)이며, 호는 와룡(臥龍)이다. 청원군 낭성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파주목사를 지낸 신필청(申必淸)이고, 할아버지는 신집(申潗)이며, 형은 신담(申霮), 동생은 신방(辛方)과 신탁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이 신부의 처남이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었다.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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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송암(松巖)이다. 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고, 할아버지는 신득홍(申得洪)이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동생으로 신만제(申萬濟)와 신창제(申昌濟)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워 있자 간절한 마음으로 인삼을 구하여 드렸다고 한다. 효행이 지극하여 1677년(숙종 3)에 지평(持平)으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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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농학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당(二知堂)이다. 승지 신경락(申景洛)의 아들이며, 족부 영원군(靈原君) 신경식(申景植)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로서 명경시(明經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지 못하였으나 시험관의 천거로 별제(別提)에 제수되고, 이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호조낭관·옥천현감 등을 역임하였고, 1644년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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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신심(申鐔)은 효자 신지익(申之益)의 아들이다. 병자호란에 갑작스럽게 적병을 만나 자신의 몸으로 부모를 막고 슬피 울며 살려줄 것을 청하니 적병들도 차마 어찌하지 못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에 단지(斷指)하여 구완하였다. 산외면(山外面) 송동리(松洞里) 삼효각(三孝閣)에 아버지 신지익, 사촌 신협(申鋏)과 함께 숙종 때 효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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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사흠(士欽), 아버지는 신일권(申一權)이다. 청원군 낭성면 지역에 세거했던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의 인물이다. 1787년(정조 11)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사헌부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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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재(美哉)이다. 아버지는 삼강록에 효행이 실리고 지역의 사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기까지 한 신용제(申龍濟)이며,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신완(申浣)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다음해인 1718년 28세에 죽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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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덕중(德中)이고, 문충공 신숙주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낙권(申樂權), 할아버지는 신백연(申伯淵), 증조할아버지는 신철(申澈)이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합격하였으며, 관직은 사간원 정언(正言)과 남포현감(藍浦縣監)을 지냈다. 충청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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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고, 효자 신심(申鐔)의 아버지이고, 효자 신협(申鋏)의 숙부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 병간호를 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애통함이 지나쳐 곡을 하다 혼절하기도 하였으며, 최질을 풀지 않고 집상(執喪)하였다. 이 일이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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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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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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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기(聖紀), 호는 월헌(月軒)이다. 아버지는 옥과현감을 지낸 신득홍(申得洪)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신용(申涌)이다. 부인은 광산노씨(光山盧氏)이다. 1684년(숙종 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다. 손자인 신근(申氵近)이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올랐기에 통정대부 승문원 부정자(副正字)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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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청원군에서 효자로 이름 높았던 신지익(申之益)의 조카이고, 효자 신심(申鐔)과 종형제이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를 소생시켜 주위로부터 효성이 크게 알려 졌다. 그의 효성은 집안 내력이었다. 숙부 신지익과 종형제 신심 등 한 집안에서 3명의 효자가 나와 나라에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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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세거하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申淑舟)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황(申仲潢)이고, 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운(申澐), 동생으로 신징(申澂)이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관찰사 정규(鄭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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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덕수(德粹)이다. 청송심씨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의 인물로 아버지는 심경수(沈景洙)이고, 할아버지는 심공망(沈公望)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심지란(沈之蘭), 외할아버지는 김후창(金後敞)이다. 거주지는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대로 추정된다. 형으로 심조해(沈朝海), 심우해(沈遇海), 심유해(沈有海), 심일해(沈日海), 심연해(沈延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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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관. 조선후기 철종 때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이다. 심의풍(沈宜豊)은 순조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1857년(철종 8)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공충도(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 금위영 기사 별장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이직하게 되자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면서 군인과 백성들을 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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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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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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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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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할아버지는 연재희(延再熙), 증조할아버지는 연응복(延應福)이며, 어머니는 유장(柳莊)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조양(趙暘)의 딸 평양조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사헌부 감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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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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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위치한, 송명휘(宋明輝)의 처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 여산송씨(礪山宋氏) 송명휘의 부인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41년(헌종 7)에 세운 정려각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정려각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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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鄭宗鉉)의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 조선 고종대에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64년(고종 1)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쪽으로 가는길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여섯 번째에 있다. 높이 97㎝, 폭 43㎝,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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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청주 출신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관(將官)으로서 용감하게 싸워 강도(江都) 남문(南門)에서 순절하였다. 후에 조정에서 포상의 은전을 내렸다. 고원군수를 지냈다. 1675년(숙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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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사(倡義使).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덕보(德甫), 호는 상당일민(上黨逸民)이다. 오덕명은 한성부서윤 오소(吳熽)의 손자이며, 호조참의에 증직된 오응창(吳應昌)의 아들이다. 생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오필창(吳必昌)이다.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천성이 충효하여 정의감이 남달랐다. 과거에 낙방하자 30세 후에는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 집을 짓고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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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똥을 직접 맛을 보아가면서 병의 차도를 진단하였을 정도의 효자였다. 어머니가 생선이나 과일 등 먹고 싶다는 음식은 모두 구해다가 봉양하였다. 친기(親忌 : 부모의 제사)가 닥칠 무렵 키우던 개가 새끼 낳을 때가 되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틀 동안 사라졌던 개가 새끼를 낳아 물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이웃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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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타고난 효성으로 이웃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가세가 빈한하여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접하면 반드시 집으로 갖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고, 먼저 먹는 법이 없었다. 어버이가 병이 들었을 때는 침식을 폐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어버이를 업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음식이 있으면 먼저 어버이에게 드리고,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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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字)는 회백(晦伯), 호(號)는 금암(琴巖)이다. 보성부원군(寶城府院君) 오천복(吳天福)의 9세손이며 생원(生員) 오행원(吳行遠)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1639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성균관의 정6품 또는 종8품 벼슬)·감찰(監察:사헌부의 정6품 벼슬)·예조좌랑(禮曹佐郞: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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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시대 이름난 효자이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가 먹고 싶다 하자, 지성으로 이를 구하여 봉양하였다. 효행으로 이름 높아 조정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란 관직을 내리고, 삼대(三代)를 추은(推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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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 중기에 효행으로 이름 높았다. 1700년(숙종 26)에 장례원(掌隷院) 별검(別檢)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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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관.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고, 1762년 숭릉 별검, 1764년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오르고, 1774년에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사헌부 장령이 되어 돈령부의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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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효자로 칭송되었던 오진택(吳振澤)의 아들이고,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오상건(吳尙健)의 손자이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청원군의 보성오씨(寶城吳氏)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효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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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높은 오상건(吳尙健)이고, 아들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나 하늘에서 나왔다고 여길 정도였고,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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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흥원(柳興源)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유응명(柳應溟), 증조할아버지는 유운거(柳雲擧), 외할아버지는 노건흠(盧健欽)이다. 청주에 거주하였으며 유학(幼學)으로 1819년(순조 19)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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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이러한 효행으로 현종(顯宗) 때 복호(復戶)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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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그의 아들 유정기(柳挺箕), 유정두(柳挺斗)와 사교(士校) 김두강(金斗江) 등 의병을 거느리고 안성 죽산에서 패주하는 적도(賊徒) 유해(柳海)를 사로잡아 토벌에 공을 세워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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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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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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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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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고성(高城)이며, 자는 무숙(茂叔), 호는 한죽당(寒竹堂)으로 천성이 효성스럽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이붕해(李鵬海), 민진완(閔鎭緩), 변관하(卞觀下) 등 의병장과 청주 인근 산하에서 군사를 수습하여 인솔하고 청주읍성(淸州邑城) 남문밖에 이르니 이미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이 적의 두목을 처참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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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휘(子輝), 호는 희암(希菴)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덕수(李德洙), 증조할아버지 이준(李浚), 외할아버지 김상(金尙), 장인은 김광찬(金光燦)이다. 형으로 이흥직(李興稷), 이기직(李基稷)이 있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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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이며, 자는 창여(暢如)이다. 아버지는 이유민(李裕民)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여 도사를 거쳐 승지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도가 지극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다. 영조 때에는 지평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연일현감 때에 어사가 그의 직분을 다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어버이을 효성스럽게 섬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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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무신란을 주도하여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李麟佐)의 동생이다. 무신란이 일어나 반군이 청주를 장악 할 때 가담한 인물이다. 반군은 청주성 장악 이후 신천영(申天永)과 이기좌(李麒佐)에게 청주를 지키게 하고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지나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군은 안성, 죽산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었고, 이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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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춘(伯春)이다.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이집중(李集中), 할아버지는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낸 이호원(李浩源),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경기수사(京畿水使)를 지낸 김형로(金亨魯)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석윤(成錫胤)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진영(李震榮)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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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순필(舜弼)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목사 이성연(李聖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조좌랑 이천(李蕆)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 재랑(齋郞)·빙고별검(氷庫別檢)과 공조·호조 좌랑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옥과현감과 김화현감을 역임하면서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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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성 출신이며, 본명은 이호이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양성에서 군사 2초(哨)를 모아 3월 15일 청주성 점령에 가담했다. 반군은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관련인물은 모두 처형되었는데, 이만은 경상북도 칠곡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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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이며, 호는 설해(雪海)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이견철(李堅鐵)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 장령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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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고,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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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685년 청주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근처에서 김진희(金晉熙), 박종귀(朴宗龜), 이도명(李道命) 등과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훈공(勳功)을 세웠다. 난을 평정한 뒤 포상에서 빠졌으나, 1887년(고종 24)에 감찰(監察)에 증직(贈職)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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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양성에서 모집된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청주성을 점령할 때 이인좌(李麟佐) 군의 중군(中軍)으로 선봉(先鋒)이 되어 병영에 들어갔다. 병영에 들어간 후 이인좌의 명으로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을 죽였다. 반군이 서울을 향하여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거쳐 북상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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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무경(茂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다. 이배원(李培源)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무관 집안인 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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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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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의숙(儀叔)이다. 이순신(李舜臣)의 5대손이다. 1702년(숙종 28) 무과에 급제하였고, 경종의 재위 중에 포도대장·훈련원 도정·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형조참판으로서 훈련·금위대장을 겸임하였다. 이때 이광좌(李光佐)·조태억(趙泰億) 등의 죄상을 논박하였다가,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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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 말의 명현(明賢)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13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종제(從弟) 이사해(李思海), 당질(堂姪) 이중저(李重著), 향인(鄕人) 김양구(金陽龜) 등을 이끌어 청주 근처 산하에서 수백 인을 모아 창의하여, 청주성의 동문을 치고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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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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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부속 강당. 목은영당(牧隱影堂)은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한산이씨 이붕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 산외일면 주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60번지)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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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1633~1709]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는 윤보(潤甫)이며, 호는 송곡(松谷)이다. 이경항(李慶恒)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를 거쳐 1660년(현종 1)에 성균관 유생으로 과제(課製)에 1등하여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그해의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문장에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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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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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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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후(仲厚)이고, 청주 남일면 고은치(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 부인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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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이원의 고손이다. 이발(李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도(金燾)의 딸이다. 판서를 역임한 이시발(李時發)의 아우이다. 청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였다. 여러 무관직을 거쳐 산계(散階)가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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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덕중(德仲)이다. 아버지는 이준상(李寯相)이며, 어머니는 김이명(金以鳴)의 딸 강릉(江陵)김씨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초기(李楚奇)이다. 부인은 한경(韓熲)의 딸 청주(淸州)한씨이다. 1723년(경종 3) 성균관에서 수업할 당시 임금이 친히 황감(黃柑)을 하사하고 시사(試士)한 자리에서 수석으로 뽑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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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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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서휘(瑞輝)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과 이인형(李寅馨)이 있다. 부인은 초계정씨이다. 1654년(효종 5) 식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에서 은거하며 경학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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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본명은 이현좌(李玄佐)이다. 청주 송면 출신으로 전라감사 이운징(李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동생은 이기좌(李麒佐)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英祖)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심유현(沈維賢), 박필현(朴弼顯), 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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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문원(聞遠)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부친은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이 있고, 동생으로 신항서원의 사액을 청한 이인빈(李寅賓)과 이인정(李寅貞)이 있다. 부인은 순흥안씨이며, 경상우병사와 함경도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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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위로(渭老)이다. 아버지는 광주부윤을 지낸 이회(李禬)이고, 어머니는 이경인(李敬仁)의 딸 전주(全州)이씨이다. 할아버지는 함경감사 이창정(李昌庭), 증조할아버지는 한림(翰林) 이주(李澍)이며, 부인은 최동주(崔東柱)의 딸 강릉(江陵)최씨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기 전에 이미 음직(蔭職:과거를 치지지 않고 조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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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청주에서 거주하던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할 때 가담하였다. 점령 이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이지경(李之璟)은 진천수령이 되었다. 이지경은 청주성 점령 이후 이인좌 등과 함께 반군을 이끌고 안성·죽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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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덕수(德廋)·항승(恒承)·대수(大廋)이고, 호는 성헌(醒軒)이다.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후손으로, 이만선(李萬善)의 아들이며 이만원(李萬元)의 조카이다. 정랑 이만성(李萬成)에게 입양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여당이라는 무고를 당하여 친국을 받았으나 논리정연하게 논변하여 영조(英祖)로부터 재주를 인정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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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정숙(靜叔)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덕사(李德泗)의 아들이고, 이덕수(李德洙)의 조카이다.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42년(인조 20)진사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검열(檢閱)을 거쳐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646년 설서, 정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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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성경(盛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섬(尹暹)의 딸이고, 형은 삭주부사(朔州府使)를 지낸 이배원(李培源)이다. 이호원(李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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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정백(靜伯)·이정(而靜)), 호는 삼죽(三竹)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이덕수(李德洙)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6년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세마(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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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안(子安)이다.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주된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정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이고,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자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나주임씨이다. 동생으로 이기직(李基稷)과 이광직(李光稷)이 있다. 16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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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열녀 임소사의 정려각. 나용석(羅龍錫)이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다 순절하자 남편을 따라 죽은 임소사의 절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4년에 세운 정려각이다. 상당구 우암동 청주대학교 정문 오른쪽에 ㈜한국도자기 소유의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안의 임시건물 뒤편에 있다. 정려각은 돌과 시멘트를 배합하여 쌓은 약 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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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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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낸 정재해(鄭載海)이고, 할아버지는 정만화(鄭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정광성(鄭廣成)이며, 외할아버지는 김일(金逸)이다. 아들은 정석조(鄭錫祚), 정석범(鄭錫範), 정석년(鄭錫年)이 있다. 음관(蔭官)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1696년(숙종 22) 전국적으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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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효자.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증손으로,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아들인데 그의 모친 채씨는 효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성과 공경으로 부모를 섬기고 부친 병환에 손가락을 잘랐으며, 상고(喪故)에 죽은 이를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도를 넘고 여막(廬幕) 삼년간 주야로 울며 조밥과 맨소금으로 집상(執喪)하더니 복상(服喪)이 끝나고 쓰러졌다. 모자 양대의 효행이 조정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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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녀이며 효부.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처로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한 일이 있었고, 출가한 뒤 병든 시어머니를 젖을 짜 봉양하여 수명을 연장하였다. 이 행위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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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청주 백성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임할 때는 청주의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겨 가는 길을 막기까지 하였다.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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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능(聖能)이며, 호는 기주(棋洲)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5대손으로 형조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들로,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정치화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으로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다. 부인은 오위장 남정(南瀞)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아들을 얻지 못하여 형 정태화의 막내아들 정재륜(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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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1799년(정조 23)에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1892년(고종 29) 동몽교관(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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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석여(錫汝) 또는 보여(寶汝)이며, 호는 동계(東谿), 건천자(乾川子)이다. 첨정 조태수(趙泰壽)의 아들이다. 재종형인 조문명(趙文命)의 딸이 진종(眞宗)의 왕비로 간택되는 등 조선 후기 소론의 벌열가문인 풍양조씨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문장으로 자처하였다. 특히, 산문에 특장이 있어 당시 팔문장(八文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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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월여(月如)이다. 출신지는 청주(淸州)였으나 주된 거주지는 충청남도 온양(溫陽)[지금의 아산]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조상현(趙尙賢), 형은 조세익(趙世翼), 동생은 조세경(趙世經)이 있다. 1681년(숙종 7)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1689년 문과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 19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예조정랑(禮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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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점에 분개하여 스스로 자결한 애국지사. 유생으로서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학문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병탄하여 나라가 망한 현실에 통분하여 죽음으로써 항의하기로 결심하고, 이 해 10월 27일 의관을 깨끗이 갈아입은 다음 단식을 결행하여 결국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충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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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충경공(忠景) 유량(柳亮)의 후손인 진사 유식(柳湜)의 딸이며, 승지(承旨)를 지낸 조태명(趙台命)의 아들인 조종혁(趙宗爀)의 후처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충정공파 족보에 의하면 조태명은 조종환, 조종혁, 조종섭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종환은 조태승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부인은 광산김씨였다. 셋째인 조종섭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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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字)는 신여(愼汝)이다. 아버지는 첨정(僉正) 조태수(趙泰壽)이며,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뒤 영소전참봉(永韶殿參奉)이 되었고, 세자익위사 시직과 호조좌랑을 거쳐 함양군수·청풍부사·능주목사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청주목사가 되어 피폐한 민심을 잘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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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사완(士緩)이며, 호는 지선당(止善堂)이다. 몸소 밭을 갈아 부모님을 모시며 어려서 아버지의 병에 대변을 맛보아 증세를 살피고, 어머니의 병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소생시켰다. 부모상에 시묘하는 6년간 범이 와서 지켜 주었다 한다. 순조 때에 침랑(寢郞)에 천거되고, 1893년(고종 30) 효로써 유림에서 상소하고, 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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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문정공(文定公) 이진(李珍)의 후손인 이재곤(李載坤)의 딸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혁(趙鎭爀)의 아내로 남편 조진혁이 청원군 강내면에 살았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아플 때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차도가 있었다 한다. 시집 간 다음 해에 잠시 친정에 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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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나이 10세에 도적을 만나 몸으로 아버지를 막다가 도적이 잔인하게도 어린 천상의 왼손 두 손가락을 칼로 잘라버렸다. 그 뒤 모친의 병환이 급하게 되자, 그는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드려서 어머니를 구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친이 울면서 말하기를, “전에는 애비를 위하여 도적에게 두 손가락을 끊기고, 이번에는 에미로 하여 또 한 손가락을 끊으니, 부모로 하여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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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무신. 1617년(광해군 9)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일등공신(靖社一等功臣)이 되었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선봉장이 되어 영전에서 승리한 공으로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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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字)는 여익(汝翼), 호는 지재(止齋)이다. 조상주(趙相周)의 아들이며, 생부는 조학주(趙學周)이다. 할아버지는 조보(趙普), 증조할아버지는 조유성(趙惟聖), 외할아버지는 유인협(柳寅協)이다. 부인은 직장(直長) 김실(金實)의 딸 안동김씨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예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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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字)는 성구(聖九)이며, 호는 죽헌(竹軒)이다. 영모제(永慕齊) 조학수(趙學洙)의 아들이다. 다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를 받들었다. 큰 손자로서 17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죽으로 끼니를 이어 여윈 나머지 손발이 뒤틀리기까지 하였으나 조상의 제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아침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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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희보(希甫)이다. 1767년(영조 43)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신화동에서 출생하였다. 효우(孝友)가 뛰어나, 사림이 정서(呈書)한 바 있으나, 정포(旌褒)에 이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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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우경(虞卿)이다. 효우(孝友)로 세상에 알려져 송치규(宋穉圭)가 가장(家狀)에서 칭송하였다. 1884년(고종 21) 효행으로 감찰에 증직(贈職)되었다. 채지홍(蔡之洪)의 문인이다. 유고 1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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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흡여(潝如)이다. 교리 조수익(趙守翼)의 아들이다. 광해군 말에 등용되어 승문원 정자가 되고, 1623년(인조 1) 김류(金瑬)·이귀(李貴) 등이 반정을 꾀함을 알고 이에 호응하여 포의(布衣)의 몸으로 이천(利川)으로 가서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군병을 모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웠다. 인조가 즉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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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호는 운옥(雲獄)이다. 지필동(池必東)의 아들이며,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에 청주를 피하여 영남·호남지방을 여행하는 동안 사회제도의 모순을 간파하고 시정을 노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회덕으로 옮겨 학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서 만민평등(萬民平等), 국민개병(國民皆兵), 전제개혁(田制改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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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字)는 경첨(景瞻)이다. 아버지는 지만유(池萬游), 할아버지는 지광일(池光日), 증조할아버지는 지성귀(池聖龜), 외할아버지는 이양(李瀁)이다. 거주지는 청원군 가덕면 은행리로 추측된다. 1752년(영조 28)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의 21위로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다. 1763년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나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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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직경(直卿)이다.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채응호(蔡應昊)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채종길(蔡宗吉)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아들은 진사(進士)로 직장(直長)을 지낸 채지숙(蔡之淑)과 형 채적(蔡頔)의 집안으로 출계한 채지익(蔡之瀷)이 있다. 음사(蔭仕)로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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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군범(君範)이며,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채영용(蔡領用)이며, 어머니는 유씨(柳氏)로 유승주(柳承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어머니가 『등왕각서(藤王閣序)』를 말로써 가르치면 한번에 암송하는 재질이 있었다. 8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였고, 또한『상서(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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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사찰 터. 조선 후기의 절터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남악사(南岳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청심암(淸心菴)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작은 암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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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구룡사지의 사적비. 1764년(영조 40) 구룡사(九龍寺) 창건과 중창 내력 및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기술한 비로, 은재거사(隱齋居士)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새겨서 건립했다. 상당구 산성동의 청주 상당산성 남문 옆에 있다. 높이 131㎝, 폭 54㎝, 두께 22㎝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簷)]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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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한, 마을을 지키는 선돌 장승의 성격을 띤 불상.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불상의 복부 하단에 ‘순치구년십일월십육일입(順治九年十一月十六日立)’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652년(효종 3)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마을 입구의 논 한가운데 서 있다. 방형석주와 같은 화강암의 상단부에 두상을 조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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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병인양요와 1871년에 있었던 신미양요를 통해 서양세력을 격퇴한 후 그 전승을 기념하고 척화를 강조하기 위해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 세운 것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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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의 내력을 서술한 비석.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겸 청주진병마절제사로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자신의 시조인 한란(韓蘭)[?~?]을 제사지내기 위해 1605년(선조 38)에 건립하였다. 한백겸은 한란의 유적을 고증하여 찾고, 그 동생인 이조참판 한준겸(韓浚謙)은 제사 때마다 후손들이 읽고 알 수 있도록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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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위패 모신 사당. 충렬공(忠烈公)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부사로서 동래성을 사수하다 순절하였다. 동래에 있던 묘소를 이장한 후 1610년(광해군 2)에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이 사당을 건립하였다. 흥덕구 수의동 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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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충청도 병마절도사 본영의 정문.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으며,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본영을 드나들던 출입문의 문루(門樓) 이다. 병영의 출입문은 보통 원문(轅門)이라고 부르며 좌우로 담장이 이어져 병영을 에워싸고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공포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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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세 충신을 모시는 사당. 조선 영조 때의 충신인 이봉상(李鳳祥)[1676~1728], 남연년(南延年)[1653~1728],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부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으로 침입하자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봉상을 비롯하여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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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순조 26)에 청주목에서 일어난 괘서사건(掛書事件). 1826년 3월 16일 청주성 북문에 두장의 괘서(掛書)가 걸린 사건과 같은해 10월 초 청주목 관아에 괘서가 걸린 사건을 말한다. 청주북문 괘서사건은 충청병사 이겸회의 조사로 주모자 김치규(金致奎), 유치중(柳致仲), 이창곤(李昌坤) 등을 체포하고, 안성에 살고 있는 공모자 유성호(柳性浩)를 체포함으로서 일단락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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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승병,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청주 의병 등이 합군하여 왜군에게 함락 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한 전투.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옥천에서 일으킨 조헌의 의병과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승병 그리고 박춘무의 청주 의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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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정려각. 청주한씨 문중에서 배출한 한준(韓峻), 한사영(韓士英), 한성(韓鋮), 한해점(韓海漸) 등 4명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각이다. 상당구 용암동 방서사거리에서 보은 방향으로 약 150m 지점 길가의 좌측에 있다. 가로 약 6.13m의 장대석 기단위에 정면 2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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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양성현의 가천(加川)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최경우는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양성에서 반군과 말을 모집하였으며, 3월 15일 청주성을 장악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李麟佐)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최경우는 좌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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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화(江華)이고, 자는 일민(日敏)이며, 호는 퇴암(退庵), 초명은 승(昇)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증직된 최혁(崔爀)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좌랑으로 증직된 최정화(崔挺華)이다. 처의 부모는 통덕랑 이시무(李始茂)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관직에 있을 때 선조(先祖)인 제정공(齊貞公) 최용소(崔龍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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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주치(州治)의 서문(西門) 밖에 있던 군인을 사열하던 장소. 현재까지 치부당(治賦堂)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려진 기록이 없다. 즉 치부당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까지 남아 있었는지, 건물이었는지 등, 현재 청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유적 혹은 유물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발간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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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윤(韓鈗), 할아버지는 한양호(韓養浩)이고 외할아버지는 김리구(金履久)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式年) 전시(殿試)에 병과(丙科) 26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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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영조(英祖)~정조대의 문신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예지(禮之), 호는 광암(廣庵)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으로 증직된 한후유(韓後裕)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익수(閔翼洙)의 딸이다. 부인은 김치만(金致萬)의 딸인 정부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한상이(韓象履)이고, 2남은 한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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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사정(士精)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한익형(韓益亨), 할아버지는 한세헌(韓世憲), 외할아버지는 이석하(李碩夏), 아버지는 한경규(韓慶奎)이다. 아내는 변희적(卞熙績)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시에 병과(丙科) 급제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1763년에 정언(正言), 1768년 장령(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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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해월의 묘. 우암산 우회도로의 대한불교수도원의 기점에서 우회도로를 따라 약 800m 지점이며, 우암산우회도로가 있어 접근하기에 편리하다. 태극문을 새긴 대리석에 ‘烈女海月之墓(열녀해월지묘)’라는 묘비와 더불어 있다 조선 영조(英祖) 즉위 후 소론이 배격되자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는 정희량(鄭希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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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허직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거주지는 개령(開寧)이었다. 아버지는 허좌(許佐)이고, 할아버지는 허돈(許暾)이며, 증조부는 허박(許璞)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다음해에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곧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고종 2)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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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때 충청병영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초명은 진(震), 자는 춘경(春卿)이다. 첨절제사 홍수명(洪受命)의 아들이다. 충청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에 의하여 청백함이 인정되어 1727년(영조 3) 막료가 되었다. 이인좌의 난으로 1728년 청주읍성이 함락되고 이봉상이 잡힌 다음 죽음을 당하자, 그는 자신이 절도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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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원구(元九), 호는 만주(晩洲)이다. 청주 판교리(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 증조할아버지는 홍해(洪瀣), 외할아버지는 남충원(南忠元), 장인은 김발이다. 아들로 홍일우(洪一宇) 등 4형제를 두었고, 동생으로 홍석주(洪錫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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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만계(晩溪)로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병든 어머니께서 민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마침 장마로 물이 넘쳐 강가에 그물을 치고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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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서화가.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춘산(春山)·연탄(硏灘)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였으며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정주(洪定周), 할아버지는 홍필영(洪必榮), 증조할아버지는 홍희택(洪羲宅), 외할아버지는 조현성(趙顯誠)이다. 아들이 없어 홍우필(洪祐弼)의 아들 홍승목(洪承穆)을 양자로 들였다. 1850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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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동학농민전쟁 때 정부군을 이끌었던 조선 말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성남(聖南), 호는 규산(圭珊)이다. 초명이 재희(在羲)이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발하였을 때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있었는데, 명성황후(明成皇后)를 궁궐에서 탈출시킨 공으로 중용되었다. 1887년에는 충청병마절도사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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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정경(鼎卿), 호는 월탄(月灘)이다. 아버지는 홍곽(洪霍)이며,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1653년(효종 4) 알성문과(謁聖文科)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으며, 1664년(현종 5)에는 사간(司諫)이 되었다. 같은 해에 서원현감(西原縣監), 즉 청주(淸州)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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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홍일운(洪一運)의 아들이며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모가 여러 해 된 이질로 누워 계신 가운데, 그는 십리쯤 떨어져 살았으므로 문병차 밤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늘 범이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부모 병환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구하였다. 묘소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 상을 치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