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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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民社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1년 12월 - 신민사 사건 사원 황수달, 김유덕이 독립 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약속 어음을 받다 붙잡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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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신민사 사건 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송금리 |
성격 | 항일 운동 |
관련 인물/단체 | 황수달|김유덕 |
[정의]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신민사의 독립 운동 자금 모집 사건.
[개설]
1920년대 국내의 독립 운동은 직접 일제 침략 기관과 책임자를 공격하는 것과 나라 밖에 건설된 독립군 기지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의열(義烈)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즉 의열 투쟁은 일제의 침략 기관과 책임자를 응징하는 것과 친일 부호를 공략해 군자금을 확보하여 국외의 독립운동 세력에게 지원하는 것이었다. 신민사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가 군자금 확보에 중요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역사적 배경]
3·1 운동 이후 항일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펼쳐지자, 전국적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일제가 찾아낸 비밀 결사적인 독립운동 단체는 220개가 넘었다. 여기에 나라 밖에 뿌리를 두고 국내에 단원을 파견하고 있던 단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독립운동 단체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경과]
신민사(新民社)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송금리 출신의 황수달(黃洙達)[27세]과 김유덕(金裕德)[24세]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반도 신문(半島新聞)』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던 단체이다.
김유덕은 달성 친목회의 회원으로 1919년 조선 국권 회복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로 미곡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종제 김유경(金裕經)과 조선 국권 회복단, 백산 상회 등과 관계를 가지고 김재열(金在烈), 서상일(徐相日)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 신민사 회원 황수달과 김유덕이 밀양의 부호 안기원(安驥遠)을 협박하고, 『반도 신문』의 경영비 4,000원을 요구하여 약속 어음을 받았다가 붙잡혔다.
[결과]
신민사원이던 김유덕, 황수달은 신민사 사건으로 대구 복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은 의병 항쟁에서부터 시작해 자정 순국(自靖殉國), 3·1 운동, 군자금 모집, 사회주의 운동, 의열(義烈) 투쟁, 광복군 투쟁, 학생 운동까지 광복을 맞는 순간까지 쉼 없이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