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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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後揚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종식 |
묘소|단소 | 유후양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보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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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 | 유후양 정려각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보성리 78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창원(昌原) |
[정의]
조서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효자 유언겸(兪彦謙)의 증손자이다. 효자 유응채(兪應采)가 아들이다.
[활동 사항]
유후양(兪後揚)[?~?]은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람의 도리를 대략 식별할 정도로 자랐을 때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아버지를 찾으며 소리쳐 울부짖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장성하여서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죄인이라 자처하였고, 평소 기뻐하며 웃지 않았고 음악도 듣지 않았다. 아버지의 묘소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절하였는데,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아랑곳없이 늙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리고 매년 아버지의 기일에는 신위를 설치하고 소리쳐 울며 가슴 아파 하였는데, 마치 초상이 난 것과 같아서 이웃 사람들이 감탄하였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는 일 말고도 한밤에 일어나서 어머니의 침소를 살폈으며, 집안이 아주 가난하였어도 한 번도 정성 어린 음식을 거른 적이 없었고, 어머니 곁에서는 개나 말도 큰 소리로 꾸짖지 않고 노비를 책망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온유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순순히 뜻을 따르는 데에만 힘썼다.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대변을 맛봐 병의 경중을 살폈고,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하며 밤낮으로 소리쳐 울었다.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몸소 약을 달였으며, 어머니가 두풍(頭風)을 앓았을 때는 산 속 계곡으로 모시고 가서 목욕을 시켰다. 또,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서 외조부모를 봉양하였는데, 10년 동안 한결같이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이 하였다고 한다.
[묘소]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도리티 고개 동편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보성리에 효자 정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