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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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天安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서울에서 창립한 민족 협동 전선으로 국내 민족 유일당 운동의 구체적인 좌우 합작 모임이다.
[설립 목적]
1920~1930년대 민족 해방 운동은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두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런데 두 흐름은 민족 운동의 이념, 방법, 주도 세력 등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 협동 전선으로 창립된 것이 신간회이다.
[변천]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에 경성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창립 대회를 가졌다. 창립 대회에서 신간회는 “‘1.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 1.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1.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라는 강령을 내걸었다. 창립 10개월 뒤 신간회 지회가 백 개를 넘어 설 정도로 조직이 확대되었다. 1927년 2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존속한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에 120~150개의 지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회원 2만~4만 명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에 가장 규모가 컸던 사회 운동 단체였다.
신간회 천안 지회 설립 준비 위원회는 1928년 3월 3일 신간회 천안 지회 설립 준비 위원회의를 개최하고 노서호(盧緖鎬)를 위원장으로 선임하였다. 준비 위원회에서는 설립 대회 일정을 논의하였다. 신간회 천안 지회 설립 대회는 1928년 4월 1일로 정하고, 장소는 천안 예배당에서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1928년 4월 1일의 설립 대회가 연기되어 4월 15일에 개최되었다.
[현황]
신간회 천안 지회는 1928년 4월 15일 설립되었다. 간부진은 지회장 이헌영(李憲永), 부지회장 이헌석(李憲奭), 서무부 총간 김시찬(金始燦), 정치 문화부 총간 노서호, 조사 연구부 총간 홍찬섭(洪讚燮), 조직 선전부 총간 강영균(姜永均) 등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시의 회원 수는 35명이었다. 한편 1929년 1월 11일자의 『동아 일보』에 따르면 이우석(李愚奭)이 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1929년 1월 현재의 회원 수는 5명이 증가된 40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의 해소는 조선의 민족 해방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민족 해방 운동은 신간회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고 신간회는 무력한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이에 사회주의자들은 신간회 해소 운동을 통해 민족 해방 운동의 새로운 전위와 아래로부터의 반제 통일 전선 결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