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14
한자 金智貞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큰길 299-11[평리 59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11월 24일연표보기 - 김지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지정 독립청원서 서명 운동
몰년 시기/일시 1948년 8월 5일연표보기 - 김지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김지정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큰길 299-11[평리 599]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독립청원서 서명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지정(金智貞)[1889~1948]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출신으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파리장서] 서명에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윤충하(尹忠夏)[1885~1946]가 2월 19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곽종석(郭鍾錫)[1846~1919]을 만나고, 2월 28일에 서울로 상경한 곽윤(郭奫)·김황(金榥) 등과 회합을 가졌다.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경상북도 성주에서 성태영(成泰英)의 연락을 받고 2월 25일 상경하였다. 김황은 3월 2일 대한문 곡반(哭班)[국상 때 곡을 하던 벼슬아치의 반열]에 가던 중 김창숙을 만나 곽윤에게 안내하였다. 3월 4일에 유준근(柳濬根)은 전우(田愚), 이중업은 충청북도와 강원도, 김창숙은 경상북도 일대, 김황은 곽종석에게 참가와 협조를 구하여 3월 20일경 서울에 모이기로 하였다.

곽종석은 3월 9일 김황을 만나 장석영(張錫英)에게 장서를 부탁하는 서신을 보냈고, 김황·권명섭(權命燮)·김수(金銖)에게도 장서를 작성토록 하였다. 김황은 장서 초본을 탈고한 후 3월 15일 김수와 연서인 규합과 발송 자금 모집에 나섰다. 김수는 경상북도 의령·강원도 칠원 등지로, 김황은 경상남도의 거창·삼가[합천]·진주·하동으로 갔다. 김창숙은 3월 15일 곽종석을 만난 후 다음 날 경상북도 영주로 떠나 순흥·봉화에서 연서인 규합에 힘썼다. 권상원(權相元)·권명섭(權命燮) 등의 자청으로 안동·봉화·영주의 서명 규합을 일임하고 장석영의 장서 초고를 받아 다시 곽종석을 찾았다. 곽종석은 장석영의 초고 대신에 김황의 초고를 약간 수정하여 장서 원문[2,674자]을 확정하였다. 상경한 김창숙은 김창택(金昌澤)·윤중수(尹中洙)·유진태(兪鎭泰)·이덕위(李德委)·조중헌(趙重憲) 등과 협의하였고, 유진태의 소개로 임경호(林敬鎬)를 만났다. 한편, 김복한(金福漢)은 김덕진(金德鎭)·안병찬(安炳瓚)·김봉제(金鳳濟)·임한주(林翰周)·전양진(田穰鎭)·최중식(崔中式) 등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연명으로 작성하고, 임경호가 장서 발송을 준비하였다.

두 유림 측은 영남 장서를 채택한 후 유림 대표 137인을 결정하였고 김창숙에게 임무를 맡기기로 하였다. 김창숙은 3월 말경 용산역을 출발하여 이틀 후 펑톈[奉天]에서 미리 보낸 장서와 자금을 받았고, 수일 후 상하이[上海]에 도착하였다. 상하이에서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성환(曹成煥)·신규식(申奎植)·조완구(趙琬九) 등과 만났고, 국내에서 국권회복단 대표로 상해에 온 김응섭(金應燮)을 만나 협력하였다. 이들의 충고와 상의로 파리로 가는 것을 중지하고 파리의 김규식(金奎植)[1881-1950]에게 우편으로 보내 강화회의에 장서를 제출토록 하였다. 장서의 원문을 윤현진(尹顯振)이 영역(英譯)하여 한문본과 영문본 약 3,000부를 인쇄한 후 파리강화회의 의장·각국 대표·중국 등 외국의 여러 기관 및 언론계 그리고 국내 향교로 우편 발송하였다.

파리장서가 일본에게 알려진 것은 연서인 송준필(宋浚弼)의 아들 송회근(宋晦根)이 1919년 4월 2일 경상북도에 있는 성주시장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된 후부터이다. 이후 5월 초 연서인인 하용제(河龍濟)의 아들 하홍규(河洪逵)가 경상남도 단성[산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각 지방 향교로 보낸 장서로 인하여 파리장서의 전모가 밝혀졌다.

김지정은 호서 유림으로 위의 인사 외에 유호근(柳浩根)[1853~1925]·신직선(申稷善)[1853~?]·백관형(白觀亨)[1861~1928]·이길성(李吉性)·전병식(全炳軾)·김상무(金商武)·이내수(李來修)·김학진(金學鎭)·전석윤(全錫允) 등과 함께 파리장서에 연서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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