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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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廷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3월 6일 - 김정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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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김정제 군자금 모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3월 17일 - 김정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정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 |
활동지 | 만주 |
묘소 | 김정제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810-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 군정서 군자금 모집|정의부 중앙집행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정제(金廷濟)[1881~1963]는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 출신으로, 1923년 만주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활동 사항]
김정제는 1923년 3월 대한 군정서 군자금 모집 사건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복역한 후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양기탁(梁起鐸)[1871~1938]이 주도하는 남만통일회 창립총회를 준비하였다.
1924년 3월 양기탁이 남만통일발기준비회를 지린[吉林]에서 개최할 때 양기탁·오덕림·손기정과 함께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시 약 30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는데, 김정제는 남만통일회 교섭위원으로 각 단체에 파견되어 교섭 임무를 담당하였다. 김정제는 그해 10월 화전현에서 개최되는 남만통일회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때 참석한 단체는 김동삼(金東三)[1878~1937]의 통의부, 지린주민회, 무송광복단, 무송광정단, 안동통군부 등이었다. 회의를 거쳐 비로소 정의부가 성립되었는데, 정의부는 중앙 조직을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을 균형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중앙행정위원장 이탁(李鐸)[1898-1967]을 비롯하여, 중앙행정위원으로는 현정경·지용기·이진산·김용대·김이대·윤병용·오동진·김동삼 등이 선임되었다. 김정제는 후에 정의부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묘소]
김정제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810-3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