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D0200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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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eolgok Jeong Bo Seonsaeng |
영어의미역 | Master Seolgok Jeong Bo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양화 |
본관은 영일이며 휘(諱)는 보(保)요 호(號)는 설곡(雪谷)이며 중추원사 정종성(鄭宗誠)의 아들이고 포은 선생의 장손(長孫)이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안현감(禮安縣監)에 이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다. 조선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나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일어나자 분개하여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의 서매(庶妹)가 한명회의 소실로 있었는데 하루는 누이를 찾아보고 “명회는 어디 있느냐?” 고 물었다. 누이가 “대궐에서 죄인을 국문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내가 하는 말을 그에게 전하라. 명회는 만세의 죄인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한명회가 이 말을 듣고 왕께 아뢰니 왕이 친히 국문하였다. 이에 대답하기를 “ 신은 항상 성삼문, 박팽년을 정인군자(正人君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왕이 노하여 수레에 깔려 죽이는 형벌을 명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저 자가 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정몽주의 손자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왕이 급히 명령을 내려 형을 중지시키며 말하기를 “충신의 후예를 차마 죽일 수 없구나.” 고 말하고 마침내 영일로 유배하였다.
후에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丹城)으로 옮겼는데, 이때에 단종이 승하(昇遐)하시니 복상(服喪) 3년하고 단성 적소(謫所)에서 일생을 마쳤다. 1703년(숙종 29)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1731년 영월 8현사, 1791년 용인 충렬서원, 진주 옥산서원에 각각 배향되었으며, 1982년 9월에는 공주 동학사 숙모전에 배향(配享)하였다.
1905년에는 자헌대부 내부대신(資憲大夫內部大臣)에 추증(追贈)되었다.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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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묘표
는 포은 선생 묘소 왼쪽에 정경부인밀양박씨(貞敬夫人密陽朴氏)와 함께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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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공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