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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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倫學校 |
영어음역 | Myeongnyun Hakgyo |
영어의미역 | Myeongnyun School |
이칭/별칭 | 용인명륜학교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언남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근 |
성격 | 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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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06년 5월 7일 |
폐교연도/일시 | 1908년 |
설립자 | 맹보순 |
[정의]
개항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었던 교육 기관.
[변천]
1894년 기호 지방의 저명한 유학자였던 맹보순(孟輔淳)이 갈천 금화산(현 기흥구 상갈동 상미)에서 사숙(私塾)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1897년 맹보순의 명성에 의한 학생수의 증가로 상촌(현 기흥구 신갈동)에다 새로이 학당을 열었으나 이마저 협소하여 용인향교의 명륜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부터 용인 명륜학교로 불리어지기 시작했으며 1906년 5월 7일 맹보순에 의해 정식으로 개교하게 되었다. 교장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능골 출신으로 농상공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냈던 이도재가 맡았다.
교사는 맹보순 외에도 1~2명이 더 있었다. 학생은 40명 정도 였으며 용인향교 명륜당을 교실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용인군수 고청룡(高靑龍)이 단발(斷髮)을 강요하자 이에 반발한 맹보순이 1908년 학교를 수원(水原)으로 옮겨버렸다.
이후로 용인향교의 명륜학교 자리에는 1909년 6월 17일 사립 용인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이는 다시 1910년 4월 공립 용인보통학교가 되었다. 1917년에는 학교를 기흥구 신갈동으로 이전하였으며 현재는 신갈초등학교가 이 학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교육활동]
명륜학교의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용인명륜학교일기(龍仁明倫學校日記)’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교육은 주로 교사인 맹보순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교육 내용은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신구학문을 함께 교육하였다.
충군가(忠君歌), 효친가(孝親歌), 형제가(兄弟歌), 융사가(隆師歌)와 같은 창가(唱歌)를 지어 유교적 윤리를 강조하였으며 단발은 철저하게 반대하였다. 그 외 야외에서 강의를 하거나 시를 짓기도 하였으며 주제를 정하여 작문을 하기도 하였다.
1907년 3월 24일 학생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모금 활동을 하는 등 구국 운동에도 동참하였다. 이 학교 출신 정우용(鄭禹鎔)은 기호흥학회가 세운 기호학교를 졸업하고 양지보통학교와 용인보통학교의 훈도(訓導)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