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103 |
---|---|
한자 | 申太甫 |
영어음역 | Sin Taebo |
이칭/별칭 | 베드로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현범 |
[정의]
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천주교 순교자.
[활동사항]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양반 출신으로 1790년대 초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가 끝난 뒤 경기도 용인시에서 약 16㎞쯤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던 40여 명의 신자들을 이끌고 강원도로 옮겨 갔다. 신태보는 이곳에서 기록상 최초로 천주교 신자들만의 마을인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였다. 강원도에서 교우촌을 이끌던 신태보는 1804년 이전 다시 서울 근교로 옮겨온 듯하다. 이때부터 천주교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한 신태보는 그의 사촌 이여진이 밀사로 북경에 파견될 때 경비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천주교 박해 시기에 교회 서적 등을 배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신태보는 정해박해 때인 1827년 4월 22일 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사형 선고를 받기도 하였으나 조정의 재가가 나지 않아 13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였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가 발생하자 동년 5월 29일 70여 세의 나이로 참수당하였다.